▲ 장두석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연세대 총장을 지낸 정갑영 교수의 저서인 ‘열보다 더 큰 아홉’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커피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커피로 유명한 브라질과 에티오피아의 묘목장에서 한 화분에 커피콩을 한 개가 아닌 두 개씩 심는다고 한다. 한 화분에 커피콩을 경쟁시킨 후 더 잘 자라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 커피를 더 잘 자라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경쟁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초기 성장에 있어 중요한 원리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경쟁을 유도하는 다양한 시스템 중 시장경제 시스템은 사회의 혁신과 성장을 유도하는 강력한 사회 발전 엔진의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시장 경제 시스템에서는 주어진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경쟁력이 높은 기업이 자원을 사용하여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다른 의미에서는 생산자 혹은 기업은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리게 되며 항상 스스로 발전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뜻도 된다. 이는 일반적으로 기업에게 항상 혁신을 유도하고 혁신을 일으킨 기업은 살아남아 재화를 만들고 이에 대한 대가로 이윤을 축적한다는 뜻도 된다. 말하자면 시장 경제 시스템은 인간의 욕망을 연료로 태워 혁신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을 높이며 발전하는 일종의 사회 발전 엔진의 기능을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많은 비판은 있겠지만 이 사회 엔진이 비교적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 냈다.

사회발전의 엔진 역할을 해온

시장경제시스템은 급성장에도
빈부격차로 인한 신뢰도 저하

복지확대에서 해답 찾을수 있지만
성장엔진인 시장경제의 성찰 필요

성장의 정점 다다른 국내 주력산업
급격한 디지털화 시대변화에 발맞춰
기존의 하드웨어 중심 산업보다는
소프트웨어 위주 서비스에 주목해야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경쟁은
동일한 제품의 혁신다툼이 아니라
새로운 제품 창조에 초점 둬야

그런데 이 사회엔진에는 한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는 데 마치 오래된 엔진에 기름 찌꺼기가 끼는 것과 같다. 필연적으로 경쟁은 갈수록 심화되고 광범위하게 발생하면서 현재 수준보다 더 높은 혁신을 이루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혁신을 이끌어가는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로 나누어지게 된다. 말하자면 빈부격차의 확대이다. 빈부격차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존재하여 성장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 욕구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이 시스템의 신뢰 문제가 확대되게 된다. 예를 들어 기름 찌꺼기도 그 양이 많지 않을 때는 윤활유의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많으면 엔진의 성능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청년들이 N포 세대를 이야기하며 창조성이나 진취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공무원 시험과 같은 안정을 추구할 때 이미 이 사회엔진의 불이 꺼져 가고 있다고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해결책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증세 및 정부 지출의 확대 등을 통한 소위 복지사회의 확대이다. 보통은 유럽의 다양한 사회 경제 모델을 이야기하며 기본 소득제나 다양한 복지 관련 논의가 이루어지며 최근의 코로나19와 다가오는 선거는 이에 힘을 싣는 모양새이다. 다만, 이러한 복지 논의가 복지 자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다시 성장의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최근에 복지라는 화두의 옳고 그름과 그에 접근 방식 및 효율성에 대한 논의는 지난한 검증 과정을 예고하겠지만, 그에 앞서 지금까지 작동한 사회 성장 엔진을 통한 성장 논리는 여전히 유효한지 고민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중후장대한 산업을 위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이를 주로 해외에 판매하면서 자본을 축적하고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산업의 대부분이 과거 20~30년 전의 산업의 연속이고 더 이상 새로운 산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은 유감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주력 산업은 성장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대부분의 주요 산업에서 과거와 같은 양적 질적 산업의 급격한 발전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삐삐에서 통화만 가능하던 시티폰으로의 발전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이후 시티폰은 다시 피처폰으로 발전하였다. 그 이후 다시 스마트폰이 나왔고 아이폰이 나왔다. 지금은 스마트폰 시장마저 성숙하여 대부분의 스마트폰이 차이는 있지만 성능차이를 일반인이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제조업은 AI, 인공지능 등 제조업 고도화를 통해서 또 다른 발전의 길을 걸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과거와 같은 급격한 고용증가와 함께 공급자인 기업이 이전과 같이 사회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지는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그럼에도 시각을 달리 보면 사회성장 엔진으로서 시장 논리는 여전히 강력히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에 코로나19는 이러한 가능성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다. 예를 들어 중후장대한 하드웨어 위주의 제품 생산에서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발견, 온라인 교육 및 소비 시스템의 구축, 코로나 블루로 지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카운셀링 산업 등 다양한 의미의 소프트웨어 위주의 산업이 그것이다. 최근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보면서 이제는 콘텐츠의 영향력이 한 나라의 울타리를 넘어서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다만 이전의 성장 엔진의 논리가 주로 공급자 간의 경쟁을 통한 혁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번의 소프트웨어 위주의 산업 발전에는 기존의 경쟁 논리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어떤 다른 영화사가 ‘기생충’이나 ‘미나리’와 같은 동일한 제품으로 경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또 다른 콘텐츠를 창조할 뿐이다. 혹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이것이 동일 교육시스템으로 교육제공자끼리 경쟁한다는 뜻과는 다르다.

요컨대 지금까지 하드웨어 위주의 제품과 달리 소프트웨어 위주의 제품 그리고 서비스는 더 많이 생산 및 소비된다고 해서 그에 따른 눈에 띄는 비용증가가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운송비가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의 벽을 넘는다면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판매 가능하다. 최근 사회의 온라인 디지털화로의 급격한 변화는 이러한 가능성을 높여 경쟁의 기능을 같은 제품에서의 혁신보다는 지금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제품을 창조하는데 초점을 두게 한다. 따라서 생산자는 이제 제품의 품질 혹은 가치라는 본질적인 부분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세상을 발전시킬 창조적인 생각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2단계의 사회 발전 엔진은 그 대상과 그 형태가 바뀌어갈 뿐이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장두석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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