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년전 옛날 울산만은 거대습지
2001-01-08 경상일보
울산만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께는 바닷물이 다 빠져나간 거대 습지였을 것이다. 향토사연구가 이영춘씨(전 울산정보통신고 교장)는 박용안 서울대학교 해양학과 교수 등과 지난 99년 1월22일 가진 토론내용을 요약한 〈울산의 암각화와 해면변동〉(울산문화원 펴냄)에서 이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그는 6000년 전후의 해수면 상승기에 바닷물이 울산들에 범람했다가 상류에서 운반된 퇴적물이 점점 바다를 메워 내만→석호→습지로 변모하고 그후 역사시대에 들어와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농경을 하게 됐다며 10세기경 울산들이 바다였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 근거로 김극기의 〈시서〉나 권근의 〈기문〉을 들면서 고려시대에는 울산들이 범람원환경이었다는 것이다. 6000년전쯤 바닷물이 육지로 밀고 들어왔을때 울산들판은 대부분 바다로 변했는데 이를 "고울산만"이라한다면 그 바다의 끝은 지금의 태화동 남산사 부근으로 추정할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볼때 반구대 바위그림을 남긴 사람들은 굴화 앞바다가 아닌 장생포 연안의 동해에서 몰이어법으로 고래를 사냥했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굴화리부근까지 바다였고 그 바다에 고래가 회유했을 것이란 굴화리 포경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 그는 얕은 바다를 싫어하고 점핑을 많이하는 고래의 생리적 습성과 행동양식, 회유로와 절식의 상관관계를 들어 굴화리포경설을 체계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고래들은 방어진등대→서생 간절곶해역→기장해역으로 직진회유를 하고 있는데 고대에도 이 코스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회유기간중 먹이먹기를 최소하하는절식하는 생태에 비춰볼때 먹이감을 찾아 굴화까지 올리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영춘씨는 대곡리 바위 고래그림제작인은 해양부족이었을 것으로 보고 이 부족이 전쟁이나 천재지변에 의한 재앙으로 사라지고 다른 생활양식 즉 육지수렵의 문화를 가진 부족으로 대체돼 바위그림이 물짐승그림에서 뭍짐승그림으로 옮겨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애정기자 love@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