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노인의 새해소망 주민등록증
2001-01-03 경상일보
"올해는 주민등록증을 꼭 마련해 죽기전에 50년 묵은 소원이나 풀었으면 좋겠어…"서울 영등포역 뒤 몸하나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쪽방에 사는 남궁태우(83) 할아버지의새해 소망이다. 지난 50년동안 주민등록증도 없이 국민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보장도 받지 못한채 살아온 남궁 할아버지의 사연은 지난 반세기동안 기구하게 얽혀있다. 고향이 함경북도 나진인 그는 해방후 북에서 일본으로 갔다. 거기서 결혼까지 했고6·25 휴전무렵 아내와 네살배기 아들을 먼저 북으로 가는 배에 태워보냈다. 며칠뒤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원산행 배를 탄다는 것이 그만 부산행 배를 잘못타는바람에 인생 전체가 꼬이는 불행의 시작이 됐다. 이후 간첩 혐의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끌려가 고문.폭행을 당하고 풀려난 후 지난50여년간 대한민국 주민 아닌 주민으로 전국을 돌며 농사일, 공사판 등 안해본 막일이 없다. 그러나 지금껏 주민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북에 있는 가족 생각에 눈물만 흘렸을뿐 이산가족 상봉은 엄두도 못냈다. 8순의 노구에 수세미 팔이로 생계를 겨우 이어가는 남궁씨는 지난 98년 청량리역에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주겠다"는 어떤 이의 말에 없는 살림에 80만원을 모아건넸지만 고스란히 날리는 등 과거 3번이나 주민등록증 사기를 당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요즘 마음을 들뜨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지난달 중순 참여연대와이 지역 시민단체인 햇살 보금자리의 도움으로 서울 가정법원 호적계에 꿈에도 그리던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한 가호적 신청을 낸 것. "매년 음력 섣달 그믐이면 그냥 방바닥에 대고 하염없이 울지. 요즘은 주민등록증마련생각에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잠도 안오고 소변에 피까지 섞여나와" 그러나 주민등록증 마련이 이만 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려면 먼저 국적이 대한민국인지 확인이 돼야하는데 고향도 이북이고 사고무친에다 떠돌이 삶으로 전전해온 남궁씨의 신원을 확인해줄 사람이 마땅찮기 때문. 거기다 귀도 어둡고 언제 세상을 뜰지 모르는데 주민등록증 발급까지 2∼6개월은 족히 걸린다는 것이다. 3일 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남궁씨처럼 최저생계이하 수준인 전국 8천여개의 쪽방에 살며 주민등록증이 없거나 말소돼 사람들은 대략 2천명정도로 추산된다. 참여연대의 문혜진 부장은 "주민등록증이 없어 기초생활보장제와 같은 최저 생계보장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수급권 운동을 계속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