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 온 세계가 한자리에 모이는 첫 스포츠 경기인 월드컵을 항상 주변 국가로 인식되어온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다. 21세기가 공존과 상생의 시대임을 증명하듯 우리와 일본이 그 긴 대립의 상처를 극복하고 함께 이 축제를 주최하게 되어 더욱 감격스럽다. 이 대회의 개막식은 아시아가 21세기 문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것을 온 지구촌에 공포하듯, "동양으로부터"라는 주제로 환영과 소통에 이어 어울림, 마지막으로 나눔의 마당으로 이어지며 춤과 음악이 장관을 이루었다.

 1988년 올림픽을 비롯하여 한국에서 이러한 대규모의 행사가 열린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중앙 중심적인 한국 문화에서 이번 행사는 서울만이 아닌 울산을 비롯한 지방의 주요 도시에서 경기를 하게 되어 세계의 눈과 귀를 지방으로도 모으며 지방화의 세기를 여는 첫 잔치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 면에서 서울 편중현상은 최근 더욱 심화되어 모든 지방을 하나로 뭉뚱그려 이해하려는 상황에서 울산을 대표하는 문화예술이라는 게 과연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과연 세계에 울산의 어떤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사람들은 흔히 울산은 우리 나라 최고의 산업 도시이나 문화의 불모지라고 평가절하 한다. 울산에서 이제 겨우 세 번째의 봄을 맞는 필자지만 지방에서도 국내 최고의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울산 시민들의 문화 발전에 대한 열렬한 관심과 노력을 항상 가까이 접하고 있기에 문화 도시로의 발전에 큰 희망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먼저 울산을 차별화 하는 새로운 전통문화를 만드는 작업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이라면 그저 오래된 것으로만 생각하고 과거지향적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전통이란 옛것을 참조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모두 즐겨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아주 오래된 전통인 줄로 알고 있지만 실은 19세기 말 영국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울산에 전해 내려오는 여러 설화도 문화상품으로서 훌륭한 가치가 있지만, 새로운 문화 만들기에 변화하는 산업도시 울산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시도가 우리를 미래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새로운 전통 및 문화 창출을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인적 자원 개발 및 양성, 그리고 지원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올해 울산시에서 월드컵과 병행하여 기획한 뮤지컬 "처용"과 창작 칸타타 "울산, 내 사랑" 등은 그 주제나 내용 면에서 울산의 독특한 문화 창출을 시도한 진솔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공연 자체에 대하여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모든 시민들은 울산을 소재로 한 이러한 기획에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연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인들이긴 하나 울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른바 문화 외부인들에 의해 예술적인 우월성만 배려하고 만들어졌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화적 내부인의 참여가 이러한 공연을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울산의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단기적 계획과 장기적 계획을 병행해야 한다. 단기적인 시도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세계 최고 또는 국내 최고의 문화 예술인들의 도입하여 훌륭한 예술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 예술인들의 동참이 필수적이다. 어떠한 역할이든 문화 내부인들의 참여는 우리의 독특한 문화예술 발전에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보다 장기적인 계획으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이 지역의 젊은이들을 양성하는 일이다. 이 일은 학교 교육, 시 당국의 정책 수립, 또는 기업의 지원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울산 시민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일이며 주도면밀한 계획과 장기간의 철저한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가끔 10년 후쯤 울산대학이 키워낸 학생이 세계 최고의 음악가가 되어 울산을 위한 공연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입가엔 웃음이 번지며 가슴이 벅차 오른다. 지나친 상상일까?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