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건조2부에서 골리앗 크레인을 운전하는 이경호 기원(57)의 근무지는 "하늘"이다. 점심시간을 뺀 근무시간은 모두 64m 높이의 상공의 1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보낸다. 아파트로는 23층 높이다.

 "시야가 확 트였죠. 거대한 현대중공업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죠, 근무환경으로는 단연 최고 아니겠습니까."

 크레인을 기사로 일하다가 지난 74년 골리앗이 도입되면서 자리를 옮긴 그는 30년 가까이, 현대중공업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골리앗 크레인과 함께해 온 베테랑이다.

 골리앗 크레인은 높이가 107m, 폭이 140m로 자체 중량이 3천600t에 이르는, 말 그대로 "골리앗"이다. 골리앗의 허리 쯤에 자리한 1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은 정밀작업과 안전을 위한 시설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모니터 4개와 컴퓨터시설, 크레인을 좌우상하 위 아래로 조절하는 작동기, 냉·온방에서부터 "소변을 볼 수 있는 시설"까지 다 갖춰진 공간이다. 시야확보를 위해 앞부분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땅바닥을 내려다 보지도 못할 정도로 아찔하다.

 "나야 몇 십년을 하늘에서 살다보니 밀폐된 공간이나 땅바닥이 오히려 답답하죠. 그런데 이곳을 몇번 오르내리던 작업인부들이 화장실 간다며 슬며시 나가서는 몇년째 돌아오지 않기도 하죠"

 골리앗 크레인은 소조, 대조 공정을 거쳐 대형 블록으로 된 배의 일부분을 합체하는 마지막 공정에서 활용된다. 바닷물이 찰 수 있도록 비워 놓은 도크에서 300~900t에 이르는 선체의 부분들을 정교한 솜씨로 연결한다. 450t 이상 블록을 옮길 경우엔 2대의 골리앗 크레인이 병렬작업을 펼친다.

 "단순 고철덩어리 처럼 보이던 것들이 내 손을 거치면서 배의 형태를 갖춰 가죠. 그래서 도크에 물을 채워 배를 처음 부상시킬 때는 내 마음까지 붕 뜨는 것 같습니다."

 배를 만드는 모든 공정에 참여하는 인부들이 자기 작품이라해도 맞는 말이지만 배의 형체를 만들어 내는 이씨에게는 더욱 각별할 수 밖에 없다. 모든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선박 진수식은 "자식"이 새로 태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70년대 후반에는 대형 선박 진수식이 나라의 큰 행사로 치뤄졌죠. 그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방문해서 선박 진수식을 가질 때는 정말 가슴이 뭉클하더라구요."

 모래사장이던 바닷가에 도크를 설치하던 때부터 첨단 기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지금까지 현대중공업을 발전상을 하늘에서 내려다 보아온 이씨는 이제 지칠 때도 됐건만 일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출퇴근 시간에 꼭 맞추어 일하는 직장인이 아니라 자신의 할일에 따라 사생활은 얼마간 뒷전이다. 퇴근이 늦어지거나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할 경우에는 회사 숙소에서 자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남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휴일근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별한 자긍심 같은거 없어요. 그저 내일을 아끼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아들 둘 다 자기 앞가름을 할 수 있도록 키워 냈죠, 내 한몸 의탁할 수 있는 전원주택도 한채 마련해 놓았죠, 더 바랄게 있겠습니까."

 높은 곳이다보니 바람이 최대 적이다. 태풍이 닥치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아슬하기까지 하다. 휘청거림이 심할 때면 30년 베테랑도 적잖이 불안하다. 하지만 그가 날씨 때문에 골리앗에 올라가지 않는 날은 없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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