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남구 옥동 근로청소년복지회관 옆 약수터. 청바지에 남방, 등산용 모자, 선글라스를 낀 단정한 차림새를 하고는 쓰레기 봉투와 집게를 들고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는 한 아저씨가 눈길을 끈다. 차림새로 미루어 청소가 직업인 사람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휴지를 집어담고 약수터도 깨끗하게 씻어내는 폼이 서툰 데가 없다. 일이 몸에 붙은 사람 특유의 능숙함이 배어 있다.

 그는 울산대공원 주차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한라한솔아파트에 살고 있는 박양수씨(55·울산시 남구 옥동)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깥을 내다보다가 지저분한 것이 눈에 띄면 특유의 단정한 차림새를 갖추고 나선다. 이미 주위에선 "쓰레기아저씨", "잔소리꾼", "군기반장" 등의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성격이죠. 원래 지저분한 것을 아주 싫어하거던요. 저기 쓰레기가 눈에 보이잖아요. 저걸 안치우고 그냥 가면 마음이 몹시 무거워요. 그걸 치우고 나면 내 마음이 좋아지는 걸요."

 간단하게 이유를 말하지만 그가 청소를 하게 된 배경은 그의 삶을 바꿀만한 크나큰 이유가 깔려 있다. 음식점을 하던 박씨는 지난 99년 위암선고를 받았다. 그해 7월 수술을 한 뒤에야 1기말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처음에는 위암 3기로 알았으니 죽음의 목전까지 갔다온 셈이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해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로에는 쓰레기가 많았다. 성격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지팡이 대신 쓰레기 집게와 쓰레기 봉투를 들었다. 조금 창피스럽기까지 했으나 청소를 한 뒤에 느끼는 보람과 긍지가 더 컸다. 청소를 하고나면 온몸이 땀에 흠뻑 젖지만 그에게는 가장 "삶의 맛"을 느껴지는 시간이다.

 "세상을 위해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때의 마음의 가벼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죠."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환자로서의 슬픔을 이기는 데도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으나 점점 건강이 회복되어 갔다. 지금은 대형 쓰레기자루도 너끈히 들고 옮긴다.

 "약수터와 등산로를 돌아보고 쓰레기를 치운 것이 혈액순환에 보약이 된 거죠. 이제는 거의 정상 컨디션을 되찾았습니다."

 처음 청소를 시작할 땐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동사무소에서 쓰레기봉투를 얻으러 가서도 의심을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이젠 동사무소에서도 그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동장상을, 2001년엔 남구청장상을 받기도 했다.

 "가끔 함께 청소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면 먼저 집게를 들고 나오라고 하죠.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도 안하더라구요. 처음 시작하기가 쉽지 않죠."

 월드컵을 계기로 시민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 하루에 대형 쓰레기자루 2개 가까이 나오던 쓰레기 양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차에 있는 쓰레기를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고기를 구워먹고 남은 오물을 그대로 두고 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고기 구워먹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주위로 집게를 들고 몇바퀴 왔다갔다한 뒤 "갈 때 치우고 가세요"라고 한마디 하고는 돌아옵니다. 그리곤 한참 있다가 반드시 그 자리로 다시 가서 확인하죠. 그러면 대부분 깨끗하게 치워져 있어요."

 봉사의 의미를 깨달은 그는 월드컵 자원봉사자로도 참여하고 있다. 울산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린 지난 21일에는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교통안내를 했다. 오는 9월 부산아시안게임 때에도 자원봉사자로 "예약"을 해뒀다.

 위암수술과 함께 식당을 그만둔 그는 수입을 위해 산불도 보고 공공근로도 했다. 그러나 기간도 짧고 일시적이어서 아쉽다. 고정수입이 있는 울산대공원 주차장의 청소요원이라도 했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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