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여간해서 보기 어렵지만 서커스에서 연출되는 곡예사의 묘기는 절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그들의 유연한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일 때는 마치 뼈가 없는 것으로 착각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항간에는 곡예사들이 평소에 식초를 많이 먹어 뼈를 무르게 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이는 식초가 뼈의 주성분인 칼슘을 녹여 뼈를 무르게 할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논리에서 나온 것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인체의 모든 장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몸을 항상 정상 상태로 유지하려는 능력(항상성)을 갖고 있다.

 월드컵 경기, 더위속에서 태극전사들이 두시간이 넘도록 달리고 또 달려 마치 전신의 물이 다 빠진 듯 탈진해 있다가도, 며칠 후면 다시 그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인체의 놀라운 항상성 때문이다.

 이러한 항상성으로 인해 우리의 몸은 식초가 들어온다고 해서 갑자기 산성으로 바뀌지 않으며 신장은 필요 이상으로 들어온 식초를 물과 탄산가스로 바꿔 배출시킨다. 따라서 식초를 먹는다고 해서 그 성분이 그대로 뼈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므로 뼈가 유연해지지 않는다. 곡예사의 부드러운 동작들은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을 통해 관절과 근육, 인대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지 결코 식초의 역할이 아닌 것이다.

 장마철로 접어들었다. 식욕이 떨어지고 기분이 영 나지 않을 때 식초로 맛을 더한 음식들은 우리의 입맛을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심한 운동으로 땀을 많이 흘린 다음에 먹는 새콤한 음식은 피로를 빨리 없앤다. 식초가 피로를 일으키는 물질인 젖산을 분해하여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 식초는 살균력이 있어 식중독을 일으키는 각종 세균의 번식을 막는 효과도 갖고 있다. 여름철에는 세균의 번식이 놀라울 정도로 빨라서, 대장균의 경우는 20분만 지나도 그 수가 배로 늘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번식력이 좋은 세균이라도 일정한 산성도에서만 번식이 가능하므로 식초 몇 방울로 산성도를 변화시키면 이들의 번식을 막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식중독의 위험성이 높은 냉면에 식초를 타서 먹는 것은 맛과 위생, 피로회복이라는 여러 목적을 동시에 충족해주는 합리적인 방법이다.

 어제, 우리는 모두 붉은 악마가 되어서 목이 쉬도록 우리의 영웅들을 응원했다. 오늘은 식초 몇 방울을 곁들인 냉면을 먹고 피로를 회복해보자. 최승원 울산대학교병원 류마티스·알레르기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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