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흔다섯살인 서정옥씨(울산시 남구 무거동)는 운전면허 시험을 칠 수 있는 스물이 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면허증을 땄다. 그리고 서른이 되기 전인 86년 대형운전면허증으로 갈아 치우고는 91년부터 시내버스 운전기사로서 12년째 일하고 있다. 경진여객의 "홍일점"이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운명적"으로 운전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보는 순간, 운전기사 자리에 앉아 저 큰 차를 운전하고 갔으면 하는 충동을 느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실상 버스 운전은 힘도 들지만 거친 직장이기 때문에 여성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직업이다. 힘에 부쳐 놀기도 하고 식당일을 해보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내버스 위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고 "운명"에 따르기로 했다.

 "고달프고 혼란스럽다가도 운전대만 잡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운전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내 몫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습니다. 환갑전까지는 운전대를 놓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가 시내버스 운전대에 앉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거친 세계에 여자가 부적합하다는 게 이유였다. 일단 한번 일을 시켜보고 결정하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섬세한 운전으로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운전대를 잡은 그는 우쭐한 마음도 들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멋을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운전이 그렇게 멋스러운 일만은 아니었다. 한두번 안전사고를 겪으면서 사고가 비일비재한 직업상의 특성을 깨달았다. 그 뒤부터 안전에다 모든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후진을 할 때는 반드시 육안으로 확인을 하고서야 움직인다. 불가피할 때는 승객에게 확인을 부탁한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남성들의 파워를 커버하며 대형버스를 자유자재로 "요리"해나갔다. 대개 6개월이면 새 것으로 교체하는 클러치판도 1년까지 사용하는 알뜰함도 함께 보여줬다. 남자들이 "우글"되는 직장이다보니 입장 난처한 농담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서씨는 그럴 때마다 걸쭉한 농담으로 되받아친다. 남자들의 세계라는 특성을 이해하고 남자를 남성으로 보지않고 직장동료로 보기 때문이다.

 "얕보는 눈치를 보이던 다른 운전기사들도 이제는 동료로 대합니다. 회사에서도 "여자라서" 하는 식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도로에서 만나는 젊은 승용차운전자들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소리를 들을 때도 있고 승객들이 깔보는 말투를 툭툭 던질 때는 속이 많이 상하죠. 하지만 간혹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이 오히혀 피곤해보인다며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합니다. 힘든 뒤에 찾아오는 뿌듯함은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습니다"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새벽 5시만 되면 어김없이 시민들의 발이 되기 위해 시동을 걸고 나서는 시내버스 운전기사들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대해달라고 당부한다. 최석복기자 csb736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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