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볼거리를 확실하게 제공하며, 논리적 타당성이 결여되어도 상상력을 만족시키는 가장 바람직한 상업영화의 전형이 헐리우드 영화다. 그런데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난 대부분의 관객들은 2시간 가까이 재미있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었음에도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말한다. 왜일까?

헐리우드에서 C.G(Computer Graphics) 영상화면을 만들 때 '절대 1.5초를 넘기지 마라. 상황에 따라 3초까지도 괜찮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rule)이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사물(영상)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시간이 일반적으로 1.5~3초인데, 3초를 넘기게 되면 인간(여기서는 관객)은 그 영상을 판단하게 되면서 비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상을 편집할 때 가장 중요한 편집점(Edit Point, 영상을 편집할 때 다음 장면이 이어질 위치.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관객에게 완전히 설명된 지점)이라는 것이 있다. 영상 편집시, 편집점 커팅(통상적 편집)을 하게 되면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며, 대개 장면 전환이 빨라 관객들은 영화에 흥미롭게 몰입 된다. 그런데 만약 이 편집점을 뒤로 하게 되면 관객은 이야기(영상화면)에 빠져들고 나서도 그 이야기(영상화면)가 계속 되고 있으니, 그 영상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사색의 시간을 가지게 되고 깊은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하겠지만 재미없는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서편제'에서 롱테이크(카메라를 고정한 채로 오래찍기) 기법으로 유명한 아리랑 고개 장면에서 관객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환경, 그 시대의 삶과 애환. 어떤 관객은 옛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비판도 하게 되는데, 잘 사용하면 옥(玉)이지만, 적절히 사용하지 못했을 땐 단지 재미없기만 한 영상이 되어버린다. 이 편집점을 앞으로 가져가게 되면(편집점 이전 커팅), 관객이 화면을 인지하기도 전에 다음 화면이 계속 이어져 이야기(영상화면)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되는데, 스릴러·호러·수사극 등에서는 심리적 긴장감을 표현할 수 있다. 이 역시 잘못 사용하게 되면 현란하고 정신없는 영상이 되어 버리는데, 과거 한때 유행했던 홍콩의 뮤직비디오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뭐가 뭔지 모를 영상이 그런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이 3초 법칙은 이 두 가지 방법을 교묘하게 섞어 영화를 구성한다. 영화의 이야기가 뭔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이 들려는 순간, 영화는 다음 사건들이 현란하고 정신없이 진행되어진다. '어, 어, 어?' 하는 순간이 반복되고 그러다 보면 영화는 끝나게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그래서 내용이 기억이 안나는 것이다.

이 법칙을 대체로 잘 지켜 성공한 최초의 한국영화가 강제규 감독의 '쉬리'이다. 작품의 완성도나 예술성을 왈가왈부 하기 전에 영화의 목적 중 하나가 관객이 현실을 잠시 잊고 그럴듯한 거짓말에 잠시 속아주며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좋은 징조이다. 경기가 어려우면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그 매운 맛으로 자신의 존재이유와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때, 미국의 대공항 시절이나 한국의 IMF 사태 등에서 영화산업은 오히려 발전했다. 즉 영화가 산업인지 예술인지의 기로에서 산업적 측면이 더 강해지는 것이 작금 영화시장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늘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흥행은 안되고 있지만 비평가들이 극찬한 영화를 과감히 표를 끊고 관람해 보기를 바란다. 이런 영화들은 영화 마니아가 아니면 절대 비디오나 DVD로 끝까지 볼 수 없다. 과감히 극장으로 가야 한다. 왜냐하면 돈이 아까워서 끝까지 봐야 하니까. 그리고 약간의 사색을 해보자. 아니면 비평가들이 극찬한 영화를 관객 스스로가 욕해보는 통쾌함을 위해서라도. 분명 또다른 경험일 것이다.

서울 판 커뮤니케이션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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