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울산 남구에 사는 주부 D(32)씨는 자신의 집에서 남편의 술주정에 저항하다 이가 부러지는 등 구타를 당했다.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도망쳐나와 큰 봉변은 면할 수 있었지만 현재 심한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

두 딸아이를 둔 가정주부 M(41)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의처증이 심한 남편으로 첫 아이 백일무렵부터 구타를 당한 이후 결혼생활 13년간 거의 매일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또한 남편의 무분별한 낭비벽으로 인해 월급조차 제때 받지 못하고 친정에서 돈을 빌려 아이들 학비를 보태야 했다.

남편과 별거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새댁 D(29)씨는 혼수문제로 시어머니와 남편의 구박과 폭언을 견디다 못해 얼마전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친구집에서 기거하며 편의점에서 일한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같은 일들은 TV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 울산시 가정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실제 사례들로 이 가운데는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내용들도 상당수 있었다.

아내에게 발길질을 하는 남편,아내의 얼굴을 때리는 남편, 모두 우리 사회가 용납하는 윤리수준을 넘어선 모습이다

울산시 여성정책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모두 749건으로 지난해 697건에 비해 8% 가량 증가했다.

문제는 단순한 숫적인 증가가 아니라 폭력성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종류가 다양화하고 있는데 있다.

울산여성긴급전화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상담건수가 늘어나고 있고 가정폭력의 특성상 음성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잠정 건수까지 포함하면 울산지역 상당수 가정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예년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던 아들의 부모 폭행,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폭행하는 등 충격적인 내용도 간간이 접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가정폭력은 물리적 고통은 물론 실제 측정은 힘들지만 피해자에게 막대한 심리적, 정서적 타격을 입히기 때문에 심각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또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깨트리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과 보호가 절실히 필요하다.

올해 한국단기가족치료연구소가 전국 50개 보호시설, 3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실태조사'에 따르면 보호시설에 입소한 가정폭력 피해 여성중 85.4%는 일시적 쇼크 등을 일으켰으며 무력감, 의욕상실도 80.6%에 달했다. 또한 50.2%는 심한 자살충동까지 느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시 여성정책과 관계자는 "폭력의 원인은 다양하고 한번에 해결되지 않으므로 문제해결을 개인에게 맡기지 말고 제도나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우선 어린시절부터 폭력 예방 교육이 필요하고 폭력의 발생시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보호시설'등의 안전망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현재 울산 7곳의 가정폭력상담소는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를 순화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성의전화 울산지부'의 경우 지난달 가해자 순화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40여명을 계도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가정폭력은 은폐되고 세대간 지속 되며,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끈질기고 적극적인 개입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치밀한 원인분석을 통한 다양한 사회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 권병석기자 bsk730@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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