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보다 영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짐에 따라 활자매체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활자매체의 예술적 정수를 담고 있는 시의 위기는 낯설지 않은 현상이 돼버렸다.

칼럼니스트 고종석(47)씨는 이에 대해 "이야기의 재미와는 무관한 활자 더미에 운율마저 없다면 이 비디오 천국에서 누가 시를 소비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시는 운문성을 회복함으로써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종석씨가 최근 펴낸 <모국어의 속살>(문학산책 펴냄)은 시의 위기 의식에서 출발, 한국 현대시문학사에 탁월한 성취를 이룬 시인 50명의 시세계를 통해 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한다.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인 저자가 '시인공화국 풍경들'이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신문에 연재한 글을 묶었다.

우리말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저자는 한국 현대시문학의 출발을 알린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시작으로 일급 서정시인이자 담시의 개척자인 김지하의 '오적',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시인공화국의 놀이공원 역할을 했던 박상순의 'Love Adagio(러브 아다지오)' 등 다양한 개성을 지닌 시인을 소개한다.

자유와 사랑의 시인으로 알려진 김수영에 대해서는 그의 시를 떠받치는 버팀목으로 정직을 든다. 저자는 "김수영은 시가 아름다워야 할 이유가 없다고, 아니 정직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시가 노릿한 화장을 거부하고 비시적(非詩的) 일상어로 버무려진 것도 그래서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진단한다.

시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에 대해서는 서툰 한국어와 체질적인 감상주의, 설익은 관념 취향으로 진정한 모더니스트는 되지 못했으나 '과장한 몸짓으로 황폐한 내면'을 보여주는 새로운 문학적 지평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을 위해서, 박인환은 더 살았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한다.

백석에 대해서는 "그가 북쪽에 남음으로써, 한국문학사는 '정치적으로 올발랐던 미당'을 가질 기회를 잃었다"고 언급했다.

저자는 마지막에 동요 '반달'의 작사가 윤극영을 다루면서 시가 본래 모습인 노래로서 살아남을 때 시의 위기도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420쪽. 1만6천원.

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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