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인 글쓰기는 대화와 소통을 전제로 한다. 글을 쓰고 읽는 행위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공감과 이해 그리고 잘못된 점을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담론을 펼치고 소통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말과 글은 듣지도, 읽지도 않고, 오로지 자기들의 주장만 절대적인 것처럼 내세울 때 대화와 소통은 단절된다.

내 편과 네 편을 갈라놓고 일방적으로 남을 매도하는 글과 말에서 느끼는 사고의 경직됨. 그 언어에 깔려 있는 증오와 억압으로, 갈등과 소통 단절을 부추기는 음흉한 권력이 우리를 괴롭힌다.

예를 들어 최근에 치러진 교육위원선거 결과를 두고 논박을 벌이고 있는 조선, 동아, 중앙일보에 실린 글(사설, 8월 2일자)과 전교조 위원장의 말(8월 3일자 경향신문)을 보자.

동아일보는 '전교조, 더는 교육 백년대계 흔들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전교조 서울지부의 북한의 선군정치 포스터와 부산지부 통일교재 사건 등을 논거로 전교조의 교육노선을 비판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전교조, 교육위원 선거 참패 이유 깨달아야'라는 제목으로 전교조의 이념편향성, 집단 이기주의, 과격한 행동 등을 들어 선거 패배의 이유를 말하고 정치 집단화 되어 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교조는 패배의 책임을 보수 언론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더욱 더 과격한 언어를 동원하여 전교조를 사교(邪敎) 집단으로 변해버렸다고 비판을 넘어 매도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전교조 장혜옥 위원장은 교육위원 선거에서 전교조 추천 후보가 대거 낙선한 데 대해 전교조는 잘못한 것이 없고 전교조가 이번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선거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은 보수 언론들 색깔 공세 탓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떤 사안을 보는 시각과 관점을 달리 할 수 있고 또 첨예한 갈등으로 드러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대화와 소통을 위한 담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자기 점검과 반성 없는 폭력적인 언어로 나타난다.

특히 조선일보의 글은 증오와 억압을 강요하는 언어로 되어 있다. 전교조가 사교 집단이라면 그런 집단을 합법화시킨 정부와 국민들은 뭐란 말인가. 만약 불법 집단이라면 법에 의해 처벌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할 언론의 공적 글이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언어를 함부로 사용하는데 있다. 폭력적 언어를 남발한다면 그 언론은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증오와 억압적 언어를 낳아 불신과 소통 단절의 사회를 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전교조 장혜옥 위원장의 언어도 대화와 소통을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전교조가 잘못한 것이 없고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말은 자기 반성을 모르는, 자기 점검 없는 무비판적이고 억압을 강요하는 언어이다.

그렇다면 선거 결과 왜 이렇게 나왔는가. 보수 언론 탓이라고 돌리는 것도 상투적인 논리이다. 과연 전교조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그 모든 것은 보수 언론 탓일까. 우리는 다시 한 번 전교조는 잘못한 게 없다는 주장을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글과 말의 꼬투리를 잡고 양비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화와 소통이 단절된 사회는 절망적이고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데 이것은 언어 사용에서 비롯된다. 무절제한 언어 사용은 이성적이고 논리성을 중시하는 공적인 글과 말에서는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언어는 낙서나 인터넷에 실리는 댓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우리 인간은 눈과 귀가 두 개인데 입은 하나일까를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문 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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