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거상 김문권(19)

국사 표훈이 낭산의 김대성을 찾았다. 김대성은 불곡에 위리안치된 뒤 외척 김순정에게 빼앗긴 집과 토지를 다시 찾았다. 김대성은 인공 연지(蓮池) 한 복판에 세운 정자에서 반갑게 표훈을 맞으면 종자를 불러 물과 다구를 가져오게 하여 달인 죽로차(竹露茶)를 내놓았다.

"수입차입니까?"

표훈은 당나라에서 수입한 차라고 생각했다.

"아니, 김해 소경의 백월산에서 수확한 것이오. 이제 우리 신라에서도 차 수확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오."

"하긴 부처님께 드리는 차공양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차문화는 사찰을 중심으로 나라 전역으로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었고 신라 귀족 사회에선 차 마시는 걸 그들만의 취향과 특권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 대사, 토함산 기도처에는 잘 다녀왔소?"

김대성은 유배가 풀리고 시중직에 오른 뒤로 먼저 토함산 기도처에서 머무르고 있는 김문권의 어머니 부여부인과 동복누이 연생이를 하산시키려 했다. 함께 살고 있는 계림부인을 무마시켜 하산하기만 하면 낭산택에 함께 살기로 이미 약조가 된 상태였다.

"아무래도 두 모녀의 하산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그대로 그곳에서 기도하며 살겠다고 합니다."

"음."

김대성은 한숨 섞인 신음소리를 내었다.

부여댁은 원래의 남편 고구려계 연이내와 그 사이에 난 아들 연주몽을 금마저 반란전쟁시 김대성가에 의해 잃었다. 더욱이 김문권과 연주몽, 두 동복형제끼리 전쟁을 벌여 연이내와 연주몽을 잃은 기구한 운명의 부여댁은 속세에 발을 내딛기조차 싫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왕실에서 새로운 소식이 있습니다. 가희가 상감마마의 마음을 움직였소."

"가희가 야료를 부려 비원에 법당을 짓는다는 것은 알고 있소."

"그뿐 아니라, 상감마마가 가희의 소청을 받아들여 토함산 불국토 대찰 건립을 다시 고려하겠다고 말씀하셨소. 불국토 대찰 건립은 우리들이 끊임없이 요구한 것 아닙니까?"

"가희의 야료도 부처님의 큰 뜻에는 다 필요한 것이오. 현재 우리 신라를 굳건히 하는 데는 불국토 대찰밖에 없소. 또 하나 대원은 과거 삼국의 찢겨진 마음을 하나로 잇는 사찰을 건립하는 것이오."

김대성은 고구려 유민의 반란으로 죽은 연이내와 연주몽, 그리고 수많은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을 생각했다. 물론 토함산 산중 기도처에서 신산한 삶을 살고 있는 부여댁과 연생이도 떠올렸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사찰을 짓는다는 것인데 재원은 어떻게 할 작정이오?"

"재원은 나의 재산을 다 털어내어 조달할 것이오. 재산은 있다가도 없는 법, 이번 사건을 통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소. 불곡 바위에서 관세음보살상을 조각하면서 만약 다시 옛날의 지위와 재산을 찾으면 그것으로 현재 신라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그리고 과거 삼국통일 과정에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각각 대찰을 세우겠다고 발원을 했소. 그리고 부처님은 나에게 과거보다 더 많은 가피를 베풀어 시중직에다 김순정가의 재산까지 얻게 되었소. 이제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것이오."

"삼국투쟁으로 죽은 영혼을 위해 건립할 사찰은 어디에 지을 작정입니까?"

"토함산 정상, 대사의 산중기도처에 건립할 작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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