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로 30년째를 맞는 노양주씨가 요즘 맡고 있는 아이들은 "천일홍" "석산" "뚜깔" 등 예쁜 이름을 가졌다. 이 아이들은 가을로 접어드는 요즘 한창 색색깔의 꽃을 피우며 그를 반긴다.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척과리 울산들꽃학습원의 책임을 맡고 있는 노양주 연구사의 아이들은 바로 700여종의 꽃과 나무다. 울산시교육청이 폐교된 서사분교를 들꽃학습원을 만들기로 하면서 지난 2000년 9월1일 약수초등학교 교감으로 승진한 노양주씨를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다. 식물에 유별난 관심을 갖고 있던 노양주씨는 교과서에 나오는 식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90년 신리분교에 있을 때부터 우리 들꽃 화단을 만들기 심기 시작했고 93년 온양초등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30여종의 화단을, 다시 월봉초등에도 70여종을 심은 꽃밭을 조성하는 등 이미 이 분야의 전문가로 통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한명 없는 텅빈 학교에 발령받은 그는 그날부터 2001년 5월22일 들꽃학습원이 개원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들꽃학습원에 심을 나무와 꽃을 찾으러 다녔다. 교과서를 분석해 책에 나오는 꽃을 먼저 찾고 그 다음에 울산에서 자생하는 식물을 선별했다. 준비기간이 채 1년도 안되었지만 개원일에 이미 600여종의 나무와 꽃을 가진 학습원으로 번듯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1년이 흐른 지금은 100여종이 더 늘어났다.

 교육청이 운영하는 전국 유일의 식물원인 울산들꽃학습원은 울산시교육청의 가장 성공적인 사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교사와 학생은 물론이고 지역주민들에게도 호평을 받고 있다. 개원 첫해 6~12월 7개월만에 15만명이 다녀갔고 올해도 8월말까지 15만명이 다녀갔다. 대부분이 울산에 있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지만 간혹 멀리 있는 학교에서도 견학을 오기도 한다.

 노연구사는 누군가 찾아와서 꽃을 보아주는 것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계절을 따라 새로운 꽃이 싹을 내밀기라도 하면 마음이 설렌다. 그지없이 착하고 순해보이는 표정으로 꽃과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린아이 마냥 주변사람들에게 학습원 뜰에 무슨 꽃이 피었다고 자랑을 하곤한다.

 "꽃을 보는 거나 사람을 보는 것나 똑같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생물이면서 화를 내지도 않고 언제나 웃고 있죠. 언제든지 반겨주죠. 사람을 거부하거나 미워하지도 않죠. 또한 아름답죠."

 꽃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그는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다. 함양읍에서도 10㎞나 더 가는 시골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에 나오는 꽃을 찾아 다닐 정도로 식물에 관한 한 유별난 데가 있었다.

 "교과서에서 개나리가 나왔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동네에는 개나리가 없었어요. 며칠을 찾아 헤매다가 바위와 바위 사이에 있는 개나리를 발견했는데 손이 닿지 않아 꺾을 수가 없어 여러번 보러 갔었죠. 아직도 그 곳을 찾아갈 수 있을만큼 기억이 생생해요."

 얼마전 여름 휴가 때 처가 가족들과 함께 벼르고 벼르던 백두산에 다녀온 그는 요즘 백두산 자락에 피어있던 꽃들이 가슴 속에 가득 들어차 있다. 그가 얼마나 좋아했든지 일행들로부터 "경비를 두배로 내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백두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은 백두산 2744m"라고 외우던 초등학교 때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죠. 맑은 날씨 덕분에 쾌청한 백두산 천지를 본 것도 벅찬 감동이기는 했으나 익히 사진으로 보아온 사실을 확인한 것에 불과했고 내려오는 길에 만난 들꽃들이 안겨준 감동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의 일행은 안내원을 겨우 설득해 남들이 모두 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을 천천히 걸어서 내려오면서 들꽃을 차례차례 만났다. 사막처럼 황량한 정상부근에서 내려오니까 넓은 초원이 시작되더니 곧이어 노란 색으로 뒤덮인 두메양귀비 군락을 만났다. 그는 꽃들을 쓰다듬으면서 "너 참 예쁘게 생겼구나"라고 말을 건넸다. 좀참꽃을 만나서는 "참 장하구나, 이렇게 춥고 바람도 많이 부는 데 꿋꿋하게 잘 자랐구나"라고 말해주었다. 절벽같은 언덕에 홀로 피어있던 바위구절초에게 "내가 너를 보려고 여기까지 왔구나"하고 말을 건네자 바위구절초가 환하게 웃더라고 한다. 웃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웃었다는 거다.

 "나를 보더니 웃었어요. 어쩌면 그들도 일년내내 차 꽁무니만 바라보고 있다가 사람을 만나니 반갑지 않았겠어요. 아이들도 선생이 자신을 모르는 줄 알고 있다가 이름을 불러주면 반가워하잖아요."

 그는 영화를 보아도 실내에서 찍은 영화 보다는 바깥 풍경이, 나무가 많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영화관에서 내리 두번을 보고 비디오를 5번이나 봤다. 그 영화가 인간의 내면 세계를 잘 묘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북 봉정사와 무릉계곡의 삼화사에서 찍은 그 영화에는 다양한 수종이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뒤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그는 "그 요사채 뒤에 있는 나무가 바로 엄나무야"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들꽃과 함께 있거나 꽃 이야기를 하면 절로 생기가 도는 그지만 일선 학교보다 들꽃학습원에 있는 것이 더 좋으냐고 물으면 의외로 "아무래도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게 더 좋죠"라고 말한다. 평생을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온 그는 꽃을 좋아하는 교사일 뿐이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