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157년)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랑이 바다에 나가 해조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나타나 연오랑을 업고 일본으로 가 버렸다. 세오녀가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남편이 벗어 놓은 신을 보고 바위에 오르니 바위는 또 세오를 일본으로 실어갔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에 관한 설화인데 연오와 세오를 태우고 일본으로 건너간 바위는 과연 무엇일까? 단순히 바위일까? 바위로 보이는 것은 바로 고래등이며 더 정확히 연오와 세오는 귀신 고래등을 타고 동해바다를 건너가서 일본의 왕과 귀비가 된 것이다.

귀신고래는 바위처럼 울퉁불퉁한 모습을 하여 돌고래라고도 하며 전체가 회색으로 거의 모든 개체에 흰색의 상처 모양이 있으며 굴 껍데기, 조개삿갓, 따개비 등이 붙어 있고 보통 11m 길이에 30곘 가량의 체중이 나가며 수명은 최대 70세이다.

여름철에는 동해 북부와 오호츠크해 수심 얕은 연안에 서식하고 번식을 위하여 늦가을 남쪽으로 이동을 시작해 11~12월경에 울산 앞바다를 지나 남해, 서해 및 동중국해에서 출산과 육아를 한 다음 다시 3~5월경에 울산 앞바다를 지나 북상 회유한다. 이동할 때에는 연안으로 부터 수 km이내를 바짝 붙어 통과하고 수면에 몸체를 비상하거나 수직으로 세우기 등을 하면서 분수 같은 물을 내뿜으며 움직이기에 육상관찰도 가능하다.

귀신고래란 '귀신처럼 신출귀몰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졌으며, 미국 과학자 앤드루가 울산에서 이 고래를 연구하다 1914년 논문을 발표하면서 외국에 알려졌기 때문에 '한국 귀신고래(The Korean Gray Whale)'라는 학명이 붙여졌다.

정부는 1962년 귀신고래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으나 일제 때 1300여 마리가 포획되고 1948년부터 1966년까지 포항 호미곶과 울산 간절곶 사이 해안가에서 67마리의 귀신고래를 잡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1977년 1월 방어진 앞바다 5마일 해상에서 남하하는 두 마리가 관찰된 이후 30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사할린에서의 연구조사 활동과 함께 연안에서의 관찰도 계속 추적하고 있어 한반도 연안에서 멸종된 것으로 보고된 귀신고래는 마침내 사할린 연안에서 158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나라 연안에서 귀신고래를 촬영하거나 신고하면 500만원의 포상금도 내걸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10여종의 고래 중에 새끼를 등에 업은 고래가 바로 귀신고래이며 울산은 귀신고래의 정신적 고향이나 다름없다.

울산시가 역동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에코폴리스의 10대 분야 110개 세부사업과 본격화되는 에코폴리스 범시민운동 종합대책 어느 곳에도 태화강의 연어와 숭어에 대한 관심은 많으나 귀신고래에게 돌려줄 바다생태계와 바다환경오염에 대한 대책사업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암각화에 붙어 있는 이물질을 씻어내고 바다에 떠 있는 부유물질을 수거해오면 매입해준다는 사업만으로 고래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고래박물관을 건립하고 고래유람선을 띄운다 해서 고래의 영혼이 달래지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늘어난 개체수로 고래가 보호된 것이 아니다. 고래가 춤추는 바다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에코폴리스 울산의 가장 주된 목적이 청정 환경 중시형 도시, 자연 생태계 보전 및 복원의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라면 태화강과 도심사업 중심에 해양환경에 대한 관심도 더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연안 바다는 우리 울산의 몫이다.

인터넷 과학 사이트 '라이브 사이언스 닷컴'은 2006년의 기이한 10대 과학 뉴스 중 하나로 고래의 언어를 분석한 결과 서식지역에 따라 사투리를 쓴다는 것을 선정하였다. 아들 딸을 무등 태운 귀신고래가 흰 물줄기를 뿜으며 '할매·할배의 고향땅 울산'을 찾는 그날이 진정한 에코폴리스 울산이 완성되는 날이 될 것으로 믿는다.

양희태 학성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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