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5년 전인 1992년 4월28~29일 미국방문차 LA에 머물러 있었다. 업무가 끝나고 그곳의 친구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낸 뒤, 다음날 시카고로 날아가고 있던 중, 비행기 안에서 LA 폭동소식을 들었다. 흑인 로드니 킹에 대한 백인 경찰들의 지나친 폭행, 그리고 시미밸리 법원에서 그 경찰들에 대한 무죄판결이 흑인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분노가 왜 하필이면 아무 죄도 없는 한인들에게 쏟아진 것인가? 아무튼 LA에서 시작된 폭동은 순식간에 시카고로, 워싱턴 DC로 심지어는 이웃나라 토론토에까지 마구 번졌으며 북미의 모든 한인들은 겁에 질렸고, 자기방어를 위하여 무장하여 대항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얼마 안가 그 사태는 수습되었으며 뉴욕과 워싱턴 DC를 비롯한 각지의 한인들은 흑인과 함께 교회에서 같이 합창을 하며, 우의를 돈독히 하자는 행사가 매일같이 열렸으며 평화로운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코리안 아메리칸(Korean American)이나 아프리칸 아메리칸(African American)이나 모두 과거 많은 핍박을 받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공통성이 강조되고 서로 위로받아야 할 민족이라는 점이 수습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워싱턴 DC에 체재 중이던 친구로부터 워싱턴 포스트 신문을 전달 받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 사건 이후 '왜 한인들이 폭동 피해의 대상이 되었었는가' 에 대해 심층 조사 연구한 내용을 신문 4면을 할애해 다룬 것이다. 요점만 간단히 하면, 한국어로 '나는 빵을 먹는다' 를 그대로 영어로 옮기면 'I bread eat' 이니 영어와 언어체계가 너무 달라, 재미 한인들이 가능한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언어적 접근부터, 한국에서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실례가 될 수 있다는 문화적 해석을 거쳐, 비록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미국에 와서 세탁소와 매점을 하고는 있지만 한국에 있을 때는 전문직이요 지식인이었다라는 자존심의 문제까지 모두 해석의 범주 내에 두고 있었다.

그러하니 한인 상인들이 사교적으로 고객을 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특히 흑인고객들은 상점주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어쨌든 이 사건은 우리에게 크게 두 가지 점을 시사했다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당연하지만 개인이든 아니면 인종간이든 문화적 차이가 커다란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개연성과, 또 하나는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미국 국민의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었다.

지난 4월16일 명문 주립대학 중의 하나인 버지니아텍에서의 비극적이고도 엄청난 규모 총기 살인 사건에 대해서는 문화적 차이나 기타 어떠한 해석도 적용가능하지 않다.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진 하나의 인간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를 보여 줬을 뿐이다. 다만 그 인물이 한국인이 아니기를 그토록 바랬었는데…. 지금 이 순간 한국인 모두가 고통과 슬픔, 분노와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 임하는 미국인들의 냉철한 이성과 언론의 보도태도, 정치권의 노력 등은 과거 15년 전 LA폭동사건의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미국 국민들의 그것과 정확하게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만일 한국에 와있는 미국청년 유학생이 그러한 일을 저질렀다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었을까? 미군 장갑차 사건 때도 이번 버지니아텍 사건 때도 많은 이들이 모여 촛불추도행사를 가졌다. 똑같이 경건했으며, 똑같이 찡했으며, 똑같이 안타까웠다. 다만 해석이 다를 뿐. 미국인들은 모든 일에 이성적으로 대처하나, 결코 잊지는 않는 특징이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내 우리 교민들이 불안에 떠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또 그러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꿈속에서라도 이러한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비통에 빠져있을 미국 국민 전체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하고 싶다.

박정국 동강병원 상임이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