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대신

 창가에 앉아

 콩을 까먹는다

 삶의 의식

 엄숙하지만

 성가실 때가 많다

 

 청춘 한가운데선

 본능으로

 밥을 먹었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삶을 씹는

 거룩한 의식이라는 것을

 (우리들의 시간, 2000, 나남)

 

 보통 사람들은 고상한 것과 저속한 것, 우수하고 강력한 것과 열등하고 약한 것, 똑똑한 것과 바보스러운 것을 구분한다. 그리고 이들 짝들 가운데 항상 뒤의 것들을 경멸하고 앞의 것들을 존중한다. 그러나 사회학은 이 두 가지 짝들에 대해 똑같은 값과 무게를 부여한다. 꼭 사회학적 관점에서는 아니더라도 "밥 먹는" 일은 "성가신" 일이지만 "거룩한 의식"이라는 "엄숙한" 생각만이 우리들의 삶을 더욱 치열하고 진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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