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분위기를 살피다 빨래더미로 손을 옮겼다. 네 살과 여섯 살 먹은 딸아이들의 셔츠를 개기 시작했다. "아이, 귀여워라." 올망졸망한 옷들을 만져보니 어린 딸아이들이 눈안으로 들어온다. 빨래더미에 섞여 있는 어린 딸들의 옷을 개다가 내가 어릴 적 어머님이 내 옷을 개던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다. 딸아이들 옷을 개면서 정성을 들이고 접은 소매 다시 가다듬고 예쁘게 모양내어 한 쪽에 정리해 놓고 쳐다보니 어머님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매미소리 극성스럽던 어느 여름 날 오후 허름한 기왓집 툇마루에 웅크리고 누워 마룻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낮잠을 자다 마른 옷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깨어보니 어머님이 옆에 앉아 이른 아침에 마당 빨래줄에 널어 두었던 빨래를 개고 계셨다. 꽁지가 마치 잘 익은 토종 고추보다 붉은 고추잠자리들이 마당의 빨래줄에서 붙었다 떨어졌다 술래잡이를 하던 어느 늦가을 오후에도 추수밭에서 방금 돌아와 풀빛 가시지 않은 손으로 철 모르는 막내아들의 하이얀 런닝셔츠와 파란 체육복을 어머님께서 개고 있었다. 접은 옷자락 다시 가다듬고 꼭꼭 눌러 개고 차곡차곡 정성스레 빨래를 정리하시곤 했다. 소매 한 자락 갤 때마다 어린 자식의 바른 마음, 튼튼한 몸을 기원하며 아마 정성을 들이셨으리라. 막상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어 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어머님….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사시건만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고 많아야 한 달에 두어 번 얼굴만 내미는 막내아들을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것처럼 언제라도 한결같이 버선발로 뛰어 나오시며 반갑게 맞아 주시는 어머님…. 며칠 전, 쇠고기 한 근에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힘이 없어 안 그래도 모레는 장에 나가 소고기나 한 근 사다가 불고기 해 먹으려고 했는데"라시며 내 마음을 훤히 아신다는 모습으로 "내 효자야" 하시며 얼굴 들기 부끄럽게 하신 어머님…. 기쁠 때보다 어렵고 힘들 때 더 생각나는 분이 부모님이라더니 저도 별 수 없는 자식인가 봅니다. 언젠가 절에 가서도 빌 것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빌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던…. 고생은 말로 하고 대우는 되로 받으시며 살아오신 가여운 우리 어머님…. 그래도 이제는 별 걱정없이 사신다며 자식들을 다독여 주시고 지금도 일곱 자식만 생각하시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보내시는 내 어머님….

코 끝이 시큰해온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게으른 효도…. 어머님은 아무 가진 것 없는 집에 열 일곱에 시집 오셔서 60년을 국수 장수, 우뭇국 장수, 두부 장수, 콩나물 장수, 참기름 장수로 백발이 되셨다. 여든이 다 되어서야 가난한 장사를 그만 두셨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잠시도 가만있지 않으시고 몸을 놀리신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연상되는 꽃을 든다면, 젊어서는 활짝 피지도 못한 채 이른 봄비에 시들은 목련화가 떠오르고, 자식들 낳은 이후로는 뒤를 돌아 볼 여유도 없이 오직 앞만 보고 달려 온 거친 들판의 들국화가 연상된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 였던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하신 힘들었던 일들로 내 옆에서 주무시다가 고요한 새벽녘 통증으로 잠에서 깨실 때마다 장난처럼 "아이구 아야, 아이구 내 허리야" 를 연발하시며 고통스러워 하시던 어머님의 목소리가, 세월을 거슬러 거슬러 밤 공기를 타고와 지금도 내 가슴 구석구석을 흔들고 있다. 세월이 힘들 때라 다들 그리 사셨다지만 왜 우리집은 유독 그리도 가난했던지.

이제는 개구리들도 잠을 자는지 조용해졌다.

날이 밝으면 아침인사라도 한 통 넣어야겠다.

배종기 울산기상대 예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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