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천전·언양 등 배경
암울했던 추억 동화처럼 서술

"내 고향 천전은 집집마다 창문을 열면 산채즙 냄새가 물씬 풍겨오고 대문을 나서면 옥같이 맑은 여울물이 밀려와 두 발을 함초롬히 적실 듯한 천혜의 경관을 지닌 곳이다. 더욱이 내 고향은 우리 국사 교과서 첫 페이지를 꾸미고 있는 신석기 시대의 두 국보, 천전리 각석과 반구대 암각화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깊은 마을이다"

울산 천전리와 언양, 울산시내 등을 배경으로 식민지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김하기의 소설 '식민지 소년'이 나왔다.

주인공인 김덕경 소년은 지난해 폐암으로 별세한 김하기의 아버지. 병상에서 아버지가 작가에게 이야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일제 치하의 암울했던 시대,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천전리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한 소년의 눈으로 본 아름다운 고향과 군사훈련으로 얼룩진 고통스런 학교가 이 소설의 내용을 이끌어가는 두 축이다.

발가벗긴 채 아이들 앞에서 한 시간 동안 벌서는 장면, 황새알 훔치기, 길거리에서 우연히 주운 돈으로 책을 사서 공부에 매진하게 된 사연, 증조부가 쌀 세가마를 지고 허고개를 넘어왔다는 이야기, 반구대 암각화에 낙서한 이야기 등은 아름다운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지명 등이 사실적이어서 읽는이에게 실감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일장기가 걸려있는 학교는 고통 그 자체였다. 학교 전체가 병영이었고 선생은 교관이었다.선배는 가미카제로 끌려가 죽고 덕경은 그 속에서도 은희와의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 몸에 더러운 냄새가 난다며 한번도 합격하지 못한 일본인 선생의 용의검사에 합격하기 위해 외양간 소물솥에 들어가 돌로 온 몸을 박박 문지르고, 정신대를 피하기 위해 부산 막노동자에게 시집간 누나를 찾아가 영도 판자촌의 가난한 삶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해방, 교사의 길을 걸어온 덕경은 송정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마음 속에 키워왔던 민족에 대해 이야기 한다.

동화적인 서술이어서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쉽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울산 사람들에게는 지명이나 당시의 시대상황이 친근해 소설을 읽기가 더욱 편하고 감흥도 새롭다.

작가 김하기씨는 1958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9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해 '완전한 만남' '은행나무 사랑' '복사꽃 그자리' 등 많은 소설을 썼다. 현재 경상일보에 '미인들의 동굴'을 연재하고 있다. 이재명기자 jmlee@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