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하일기,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

옛 문헌 모방·상투성 버리고 독창성 펼쳐
시대 앞선 문체 정조도 반대한 '불온서적'
풍부한 견문·진보적 사상 연암 문학 진수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그의 나이 44세 때인 1780년(정조 5년) 청나라 건륭제(6대 왕) 칠순 잔치 사절단 일행으로 가서 남긴 기행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20여 전에 쓴 중국 견문록인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 왜 다시 <열하일기>에 대한 관심과 조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가. 왜 <열하일기>인가.

이런 의문점은 연암의 <열하일기>가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복합적이며 다양한 사고를 요구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흥미 있고 역동적이며 참신하고 독창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연암의 텍스트에 담긴 그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읽어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문제점을 점검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내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 열린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과 사고를 당대 현실에서 찾고자 한 연암의 글은 당시에도 문제작이었으며, 현재도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25년이 넘게 이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 번밖에 완독하지 못한(그것도 번역본) 내 게으름을 탓하면서, 천의무봉이라 일컫는 <열하일기> 명문장과 함께 걷는 즐거운 안내와 동반의 글이 되었으면 한다.

글의 순서는 이 책의 끝 여정인 북경에서 열하로 가는 기록인 <북방여행기(막북행정록)>에서 시작하여 열하, 그리고 다시 시간을 되돌려 연암이 출발하는 <압록강을 건너서(도강록)>에서 북경까지 기록 현장을 더듬어 간다.

조선 한문학사 최고의 산문 작가. 조선 후기의 대문호. 한국의 셰익스피어. 술, 친구 좋아한 통 큰 남자. 유머의 천재. 근대로부터 현재로 오면 올수록 연암에 대한 평은 주가가 상승한다. 이 주가는 하락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용량을 넓혀 나갈 수 있는 버전이 되고 있다.

연암에 대한 흥미롭고도 유쾌한 평. 박희병 교수는 "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터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문호이다. … (중략) … 한갓 문장만 신품(神品)이었던 건 아니다. 그는 도저한 학문과 높은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글에는 심중한 사상이 담겨 있다. 그가 대문호인 것 바로 이 때문이다."고 평했다.

정민 교수는 "연암의 글은 한 군데 못질한 흔적이 없는데도 꽉 짜여져 빈틈이 없다. 그의 글은 난공불락의 성채다."와 "서늘함은 사마천을 닮았고 넉살 좋음은 장자에게서 배운 솜씨다. 소동파의 능청스러움, 한유의 깐깐함도 있다. 불가에 빠진 사람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노장(노자와 장자)으로 압도하고, 다시금 유자(유학자)의 근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고 말했다.

최양희(호주·번역가)씨는 "고전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세계명작에 들어갈 만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이런 호평을 받는 연암도 젊은 시절 우울증에 시달렸고 부친의 장지 문제로 남의 장래를 막아버린데 대한 자책(물론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지만)을 느껴 과거를 폐한 사람이었다.

지금 말하면 출세와 성공을 보장받는 시험을 포기하고(감시에서 수석을 하고서도), 임금까지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음에도 회시에서 답지를 내지 않거나 거부해버린 사람, 재야 학자와 청빈한 문인, 그러면서 술과 친구와 담론를 좋아하고 상하층 계층 구분 없이 소통하고자 했던, 고난의 인생을 스스로 택한 이가 연암이었다.

이런 연암을 두고 아들 박종채는 "아버지는 타고난 성품이 호방하고 고매했으며, 명예와 이익이 몸을 더럽힐까 봐 극도로 경계하고 삼가셨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니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 수밖에. 그러나 이런 고난과 불우함을 통쾌하게 역전시켜 버린 것이 연암의 글이며 그 중심 자리에 <열하일기>가 있는 것이다.

<열하일기>는 당대의 금서였다. 문체가 순정하지 못하다고 정조 임금까지 반대한 불온서적이었다.

독창성보다는 옛 문헌을 그대로 모방하여 상투적인 글을 그대로 인용하고 담아낸 문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금지된 글이었다. 고루하기 짝이 없는 문단에 생동감과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온 것이 연암의 문체였다. 글을 아는 식자들은 누구나 다 이 책을 읽었던 당대의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열하일기>라는 아이콘에는 다양한 글의 형식과 문체, 그리고 다양한 소재와 생동감 있는 인물과 사건 묘사, 현장감을 살린 역동적인 대화체, 해학과 진지함 그리고 실용적이고 진보적인 사고 등의 명품 파일들이 수없이 내장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다양한 글의 형식에 클릭해 보라. 그러면 중국학자, 상인들과 필담을 나눈 희곡 형식은 현장감과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달되며, 이야기 형식인 소설 '호질'과 '허생전'은 현실 풍자가 뛰어나다. 가벼운 수필체 형식인 '일야구도하기'와 '고북구를 빠져나오면서'는 묘사력이 절묘하며, 시와 비평을 논한 글은 날카로우면서 따뜻하다. 그런가 하면 수레와 벽돌을 논하는 글은 논리적이고 치밀한 문체로 논문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실로 <열하일기>는 풍부한 견문과 진보적인 사상, 참신하고 사실적인 표현 기법(김명호 교수) 등으로 연암의 문학과 사상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그러나 <열하일기>는 단지 이런 극찬의 평가로서 끝내는 텍스트가 아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버전과 패러다임을 만들기를 요구하는 게 아닐까. 어떤 가치와 진실과 삶이 이 시대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게 뭘까?

연암의 대답은 <열하일기>를 가리킨다.

문영 시인은=경남 거제 출생, 영남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국문과를 수료했다. 시전문지 <심상> 신인문학상으로 등단(1988년). 시집으로는 <그리운 화도> <달집> <소금의 날> 등을 출간했다. 현재 성신고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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