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리'가 남부지역을 휩쓸고 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침, 저녁으로 살갗에 닿는 추위가 당장 겨울이라도 찾아올 듯 예사롭지 않다. 여름내 옷장에 가둬 두었던 겨울옷을 풀고, 고유가를 핑계로 어제 오늘 미뤄오던 난방기구를 잠에서 깨워야 하는 시즌이다.

11월은 불조심 강조의 달. 매년 11월부터 화재사고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소방에서는 11월부터 겨울을 맞이하는 작업을 서두른다. 이 때가 되면 소방용수시설을 비롯한 각종 장비를 재정비하고 화재시 많은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다중이용업소와 화재취약시설의 특별점검을 실시하는 등, 예방활동도 대폭 강화된다. 게다가 소방의 날을 즈음하여 벌여지는 119 대축제를 통한 안전체험, 홍보활동 등으로 소방관들은 1년 중 가장 분주한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겨울철에 발생하는 화재는 연간 총 화재건수의 50%에 이른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이후부터다. 신의 전유물이었던 불을 갖게 됨으로써 인간은 더 이상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만물의 영장으로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불이란 것이 늘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아니었다. 잘 사용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인간에게 유용한 수단이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생명은 물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한꺼번에 휩쓸어버리는 포악함을 드러내곤 했던 것이 불이다. 판도라가 상자를 잘못 열게 되면서 온갖 불행과 재앙이 인간 세상에 등장한 것처럼,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받은 선물이 인간의 한 실수로 불행과 재난으로 전락해버리는 사례를 우리는 여러 번 보아왔다. 그 실수 중에서 으뜸은 무엇보다도 안전의식 부재라고 할 수 있다.

화재를 비롯한 각종 사고는 기상처럼 예보가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화재조사를 하다보면 반드시 인과의 법칙에 따라 원인이 있게 마련인데,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안전의식 부재였던 것이다.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과 안전의식 결여가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고 난 뒤에 후회하기보다는 미리 앞서서 점검하고 예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안전을 생활화해 사고를 미리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은 정부의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힘이 많이 드는 일은 더욱 아니다. 우선 자신의 안전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안전에 대한 불안요소는 없는지 내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더욱이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안전생활 습관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안전교육보다도 더욱 효과적인 체험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간을 독수리에 쪼아 먹히는 형벌을 감내하면서 우리에게 불을 선사한 프로메테우스의 은혜를 잊지 말고 올 겨울엔 큰 사고 없이 안전한 울산이 될 수 있기를 600여 울산소방인을 대신해 기원해본다.

김용근 온산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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