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땅 강진과 해남을 한번의 여행으로 돌아본다는 것은 어쩌면 무리다. 그러나 울산에서 남도땅은 차편으로 왕복 10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이동하는 "무리"를 감행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강행군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주말을 이용해 남도답사를 하려면 떠나기 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박3일정도라면 강진권, 영암권, 해남권을 따로 나누고 화순까지 둘러볼만하지만 1박2일로는 아무래도 하나쯤 포기하는 것이 그나마 뭔가를 얻고 올 수 있는 방법이다.

 남도는 이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에 의해 답사의 일번지로 명성을 얻은 지 오래다. 특히 그 명성은 경상도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을 거의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길이 유지해도 좋을 것이다. 딱히 무엇을 구경하지 않아도 전라도 땅은 경상도 땅과 색깔부터 다르다. 그 다름은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 곳 어느 식당에서나 맛보는 짭쪼름한 남도 음식도 여행의 맛을 더한다.

 #첫날

 아침 일찍 7시쯤 출발해서 곧바로 강진까지 간다. 5시간 쯤 걸린다. 강진읍에서 먼저 둘러볼 곳이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영랑의 생가다. 영랑생가는 사실상 오후 늦게나 새벽에 보아야 그 운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지만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니 어쩔수가 없다. 지금은 은행잎도 죄다 떨어지고 남도의 봄볕도 즐길 시기가 아니라 영랑생가의 운치가 제대로 살아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햇살"이 속삭이는 "돌담"과 다소곳한 전통 한옥의 멋이 우러난다.

 점심은 강진우체국 옆에 자리한 삼희회관(061·434·3533)을 이용하면 남도의 특미 중 하나인 삼합구이를 맛볼 수 있다. 값이 1만원을 넘어서긴 하지만 권할만하다.

 식사를 마치고는 강진권의 답사지를 고루 둘러본 다음 월출산 쪽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다산초당은 목민심서로 유명한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보낸 곳으로 이름나 있지만 그 자체가 큰 볼거리는 아니다. 그래도 남도 답사에서 빠뜨리지 않는 곳이 다산초당이다. 최근에 유물전시관을 지어놓고 다산의 일대기를 펼쳐놓았다. 유물관 앞에 주차를 하고는 20여분 산길로 걸으면 다산초당에 이른다.

 다산초당은 다산이 살았던 초당은 아니다. 원래는 작은 초가가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땅이 비좁을 만큼 큰 와가가 지어져 있다. 그 옆으로 동암과 천일각, 세채의 집으로 구성돼 있다. "다산동암"이라는 다산의 글씨와 "보정산방" "다산초당"이라는 추사의 글씨가 현판을 장식하고 있다. 천일각에서 내려다보는 구강포가 시원하다.

 다산초당에서 산길로 30여분 걸리는 백련사도 빠뜨리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도 반드시 천일각 옆으로난, 만덕산 중턱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어서 가는 것이 좋다. 다산이 혜장스님을 만나러 가던 길이다. 바닥이 푹신한 흙이라 걷기도 좋고 외길이라 길잃을 걱정도 없다. 승용차로 갔다면 한사람이 차를 갖고 백련사로 먼저 가 있는 희생을 치러야 한다. 백련사는 만경루가 웅장하게 앞쪽에 버티고 있고 그 뒤로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흙벽에 그려진 탱화가 일품인데 건물을 새로 지어 옮겨 보관하고 있다. 절입구를 넓은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이 장식하고 있다.

 강진에서 해남까지는 차편으로 30분이면 닿는다. 해남에서는 고산 윤선도를 빼놓을 수 없다. 윤선도와 그의 후손 윤두서가 살았던 고택이 있다. 녹우당이 자리하고 있고 "내벚이 몇인고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라는 〈산중신곡〉 등의 윤선도의 작품집과 조선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을 볼 수 있는 기념관이 서있다. 인근의 비자나무숲도 천연기념물이다.

 저녁은 아무래도 해남읍 천일식당(061·535·1001)에서 하는 것이 좋다. 답사를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 천일식당은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남도의 음식을 고루 맛볼 수 있을 뿐아니라 가격도 1만원대다. 강진의 영랑생가 앞 명동식당(061·433·2147 )에서 제대로된 상을 받으려면 1인분에 3만원씩이나 하는 것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윤선도 고택에서 아래쪽으로 두륜산 대흥사(대둔사)가 자리하고 있다. 깨끗하고 낭낭한 분위기다. 대웅보전으로 비롯한 현판 하나하나의 당대의 명필이며 천불전의 꽃무늬 문살은 내소사의 것과 더불어 손꼽히는 명물이다. 유물관도 따로 마련돼 있다. 대흥사에서 산길로 30여분 가파르게 올라가면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일지암이 있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올라가면 그만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대흥사 아래 유선여관(061·534·6005)도 답사를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잠자리다. 아침식사도 할 수 있다.

 #둘째날

 대흥사에서 차편으로 40여분이면 북위 34도 17분 38초 "땅끝"에 닿는다. 그러나 땅끝에서는 고색창연한 달마산 미황사도 보고 가야한다. 높다랗게 자리한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장관이다. 땅끝은 오히려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저 땅끝이라는 의미를 찍을 뿐이다. 땅끝 기념탑이 서있는 언덕에 올라서면 보길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길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 선착장(061·533·4269) 바로 앞으로 식당이 즐비하다. 갈매기둥지식당(061·534·9192)은 생태매운탕이 시원하고 조개젓갈과 간장게장이 곁들여진 반찬도 맛깔스럽다.

 땅끝에서 보길도까지는 배편으로 50분 가량 걸린다. 운항시각은 철마다 다르다. 요즘은 하루 8번 있다. 땅끝에서 출발하는 배는 7시, 8시20분, 9시40분, 11시, 12시40분, 14시, 15시20분, 16시30분에 있고 보길도에서 출발하는 배는 7시5분, 8시25분, 9시40분, 11시10분, 12시45분, 14시, 15시20분, 16시40분이다. 배삯은 6천700원이다.

 보길도는 윤선도의 유적이 그득한 곳이다. 윤선도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이 항복함을 욕되게 생각해 제주도로 가던 길에 보길도의 수려한 자연경관에 매료돼 부용동에 자리잡았다. 자연에 거스러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인공적인 집을 지은 곳이라 할 수 있는 세연정은 그가 어부사시사를 지었던 곳이다. 물이 흘러가는 한 가운데 정자를 짓고 기막히게 늘어진 소나무도 심었다. 물 속에는 자연스럽게 바위들이 솟아 있고 작은 잎파리들이 잔잔하게 떠있다.

 고산이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한 동천석실,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 바위도 관광지로 이름을 올려놓았고 복생도, 기섬, 솔섬 등의 작은 섬들이 펼쳐진 바다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자전거를 타고 섬을 한바퀴 돌면서 여유있게 여기저기 둘러보고 보길도의 특미인 전복죽과 전복회, 성게젓, 성게국 등을 부자네민박집(061·553·6276)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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