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 중국 텐진자동차는 미국 자동차 유통업체인 ANNH사와 향후 5년간 자사 차량 "샤리(夏利)"를 2만5천대 수출키로 계약했다. 첫 수출분 252대와 20만달러 상당의 부품도 이미 선적했다. "샤리"는 배기량 1천cc∼1천300cc급의 소형차다. 대당 판매가격이 평균 1만달러로 저소득층이 판매 타깃이지만, 중국산 샤리 자동차의 미국 수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이징청년보" 등 당시 중국 언론은 "중국에서 만든 자동차가 해외 자동차 시장, 특히 미국시장에 장기적으로 공급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는 중국 자동차산업이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아직 중국은 순수한 의미의 독자모델을 만들어 내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기술 축적을 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후발주자인 중국인 이처럼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어떤 이유 때문일까.

 중국 정부가 나서서 해외 자동차업체와의 합작 또는 기술제휴를 추진하는 한편, 선진업체의 기술이전 조건을 강화하는 등 자동차산업 육성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과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사실 중국의 자동차산업은 특이하게 발전해 왔다. 일반적으로 조립생산, 국산화, 독자개발 단계를 거치는 데 비해 자체개발에서 조립생산, 국산화로 진행되어 왔다. 자체개발 단계가 암시하듯 중국이 승용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 1958년 5월 최초의 승용차 "둥펑(東風)"이 제작됐다. 한국에서 "새나라"(1962년 1월) 자동차가 나온 것보다 약 4년이 빨랐다.

 "둥펑"은 구 소련의 기술 지원 아래 중국 기술자들이 벤츠 등을 분해·모방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승용차다. 곧 이어 둥펑을 개선한 "홍치(紅旗)"가 개발됐으며, "홍치"는 중국의 상징적 승용차로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60년대초부터 지방 정부의 주도로 "1성(省)1공장" 정책을 추진한 중국은 전국 각지에 소규모 승용차 공장이 난립하게 됐다. 완성차업체만 118곳에 부품업체도 2천270여곳이나 될 정도였다. 그러나 대부분 구 소련, 동유럽 등의 승용차를 분해해 모방한 수준으로 규모도 영세하고 차체, 엔진 관련 부품의 생산 등은 전혀 하지 못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7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집약화, 독자개발 능력 육성, 해외 수출경쟁력 획득을 골자로 하는 중장기 자동차산업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10.5(10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군소업체가 난립한 중국 자동차업계를 재편해 2005년까지 국제경쟁력을 갖춘 자동차 그룹을 2∼3개 육성하고 자국시장의 70%이상을 점유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자동차업계는 디이자동차(第一汽車), 상하이자동차(上海汽車), 둥펑자동차(東風汽車)의 3대 그룹과 베이징자동차(北京汽車), 광저우자동차(廣州汽車) 등을 중심으로 급속한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자동차 메이커 중에는 86년부터 합작투자를 시작하며 중국시장 선점에 나섰던 독일 자동차업체 폴크스바겐이 선두주자로 꼽힌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에도 36만823대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15%를 기록, 판매수위의 자리를 지켰다. 폴크스바겐의 중국시장 의존도는 전세계 판매실적 497만2천54대의 7.3%를 차지할 만큼 적지 않다.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GM은 상하이에서 생산중인 뷰익(Buick)에 이어 GM계열인 피아트, 이스즈, 후지중공업등을 통해 전차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포드차도 중국에서 대중차 메이커로서 위치를 구축하기 위해 장안자동차와 합작해 내년부터 소형 승용차 피에스타(Fiesta)를 생산할 계획이다.

 일본업계는 혼다가 광저우자동차와 합작으로 올해 미니밴을 생산에 투입했고, 내년에는 소형 승용차를 생산한다. 지난 87년 텐진자동차와 합작해 "샤리" 자동차를 만들었던 도요타는 지난 8월 "디이자동차"와도 텐진에 중·고급 승용차 생산기지 건설 합작에 합의했다.

 닛산도 세계시장 100만대 판매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중국이 중요하다는 인식아래 올해 4월 둥펑자동차와 연산 10만대 규모의 승용차 합작사업 추진에 합의했다. 닛산의 "마치"가 생산될 예정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업체들의 중국 진출 역사는 짧다. 올들어 현대차가 베이징자동차와 합작을 체결하기 전 까지 승용차 생산은 기아자동차가 합작했던 "위에다기아자동차"가 유일했다. 98년 5월 자본합작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연산 5만대의 프라이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경영권의 30% 지분만 기아차가 가지고 있어 투자확대와 효율적 경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기아차가 현대차에 인수되면서 위에다기아자동차도 새롭게 변모하게 됐다. 2000년 초 회사명도 "둥펑위에다기아"(東風悅達起亞車)로 바꾸고 지분비율도 50대 50으로 늘려 합작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차종도 프라이드 외에 "천리마"(베르나급)가 추가 투입돼 연말 시판될 예정이다.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은 21세기 최대시장인 중국의 잠재수요를 생각하면 반드시 현지 진출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빠르게 기술 축적을 해가고 있는 중국 자동차산업의 성장속도를 감안할 때 앞으로 한국 자동차업체는 물론 해외 선진 자동차메이커들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날의 칼과 같은 중국 자동차산업에 대해 국내 자동차업계도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상환기자 newsguy@ksilbo.co.kr

□둥펑위에다기아차 정달옥 사장(인터뷰)

 중국 장쑤성 옌청에 있는 "둥펑위에다기아차"는 한국차로서는 처음으로 현지에서 완성차를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의 정달옥 사장(62)은 "올해 현대차가 북경에 진출한 것은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더이상 미룰 경우 중국내 시장에서 한국차의 경쟁력을 갖추기는 힘들다"고 진단했다.

 -중국차 시장의 잠재력을 전망한다면.

 "양적으로만 보면 중국의 자동차산업 발전 속도는 한국을 능가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 연간 5천여대에 불과했던 승용차 생산량이 86년 1만대를 넘어선 뒤 6년만인 92년 10만대, 다시 6년만인 98년에 50만대를 돌파했다. 한국이 10만대에서 50만대로 올라서는 데 9년 걸린 기록을 3년이나 앞당긴 셈이다"

 -협력업체의 중국 동반진출이 이뤄져야 하는데.

 "한마디로 우리국내 협력업체들도 앞으로 중국시장 진출없이는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국내 완성차업체로만 납품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중국시장 진출을 모색해야 할 때다"

 -중국시장의 진출과 관련, 장단점을 꼽는다면.

 "우선 저렴한 인건비를 들 수 있다. 여기에 양질의 노동인력이 뒷받침돼 품질향상에 갈수록 힘을 보태고 있다. 다만 현지기업과의 계약을 할 때 현지 정서를 반영해 꼼꼼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이상환기자 newsguy@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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