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외국 관광객을 태운 리무진 버스가 여의도를 지나고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창밖에 보이는 웅장한 건축물을 보면서 가이드에게 무슨 건물인지를 물었다. 한국인 가이드는 대한민국의 입법기관인 국회의사당이라고 설명을 하자 그 외국인 관광객은 그제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 쓰레기통!" 하고 대답해 차 안이 온통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국회의원은 존경받지 못하는가 싶어서 웃으면서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18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되는 날 어느 의원은 입법발의 1호를 기록하기 위해 문 앞에서 밤을 새는데 늦게 도착한 의원은 문고리를 붙들고 밤을 버틴 덕에 1호의 영광(?)을 얻었다는 신문기사는 씁쓸함의 도를 넘어서고 있다.

엊그제 한나라당 울산시당의 시당위원장 선출 과정을 보고 오래 전 느꼈던 그 씁쓸함이 되살아 났다. 알다시피 우리 울산은 지난 17대 총선에서 전국의 선거구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황금분할구도를 낳았던 지역이건만 이번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하고 유일한 무소속의원마저 복당이 결정돼 그야말로 한나라당판이 됐다. 각 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까지 포함하면 실로 울산은 한나라당에 의해 굴러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울산시민들이 한나라당을 그만큼 지지하고 있다는 반증인 동시에 울산시민들을 대표하는 원만한 대의정치를 잘해달라는 무언의 채찍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나라당 울산시당의 일거수 일투족은 울산시민들의 관심사 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선 의원들이 서로 시당위원장 자리를 차지 하려고 불협화음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합의 추대로 새 위원장을 선출했다.

이번에 합의 추대된 안효대 시당위원장은 초선의원일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입당 경력도 일천한, 외람된 표현일 지는 몰라도 새내기 국회의원이 아닌가! 지금까지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초선의원의 시당위원장 선출은 파격적이다. 특히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지속되고 유가인상으로 생계를 위협당하는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는데도 민생을 의논할 18대 국회는 문도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볼 때 가히 충격적이다.

그렇다고해서 신임 시당위원장의 능력이나 자격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분 나름대로의 정치적 연륜과 덕망이나 능력도 인정하고 그분 또한 "대선, 총선 공약의 실현을 위해 울산시와 중앙당과 잘 협조해서 부족한 공장용지 확보 등 울산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일궈내겠다"는 취임 일성을 밝힌 바 있고 또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다만 울산시민들이 바라는 최상의 정치적 서비스나 더 나은 삶의 질,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노사분규나 파업으로 인해 겪는 불편함을 해소해줄 중재자로서의 적임자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초등학교는 5, 6학년에서 학생회장이 나오고 대학교도 3, 4학년이 되어야 학생회장이 될 수 있듯이 어느 정도의 경륜과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인 순리며 지역민들의 민심이 아닐까 싶다.

이번 추대과정에서 3명의 3선 국회의원들이 본인들은 시당위원장을 고루 한 번씩 거쳤기에 고사했다는 것은 명분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한 번씩 경험한 국회의원을 3번씩이나 계속하고 있지 않는가!

명심보감의 치정(治政)편에는 관직에 나간 자는 청렴함과 신중함 그리고 부지런함, 이 세 가지를 기본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이번 한나라당의 결정은 신중함의 부족이 아닌가 싶어 못내 씁쓸하다. 몇몇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머리를 쪼아리며 유권자를 하늘처럼 떠받들겠다 하다가도 당선만 되고나면 선박 갑판 위의 돛대처럼 자기가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이제 그들도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지금 취임 100일만에 돌아선 성난 민심을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돛대가 가장 높은 듯 하지만 그 돛대 위에는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는 깃대라는 무서운 민심이 펄럭이고 있다는 것을….

이상형 명진D&C 이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