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는 음력 8월 보름이며, 금년은 양력으로 9월14일이다.

서기 32년이 문헌에 의한 첫 한가위였으므로 올해 한가위는 1977번째가 되니 자못 그 역사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오래되고 또 문헌으로 고증이 되는 민속명절은 세계에서도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한가위의 유래는 신라 제3대 유리이사금 때부터라고 한다. 유리왕 9년에 왕이 신라를 세우는데 이바지한 신하들에게 왕명으로 처음 성(姓)을 내렸다. 경주에 있는 6마을의 이름을 고치고 각 부마다 성을 내렸으니, 양부((梁部, 李씨)·사량부(四梁部, 崔씨)·점량부(岾梁部, 孫씨)·본피부(本彼部, 鄭씨)·한지부(漢祗部, 裵씨)·습비부(習比部, 薛씨)가 곧 그것이다.

왕은 6부를 두 편으로 나누어 두 딸로 하여금 각 부에 속한 여자들을 큰부의 뜰에 모이게 해 삼베 길쌈내기를 하도록 했다. 새벽 일찍부터 밤 10시경까지 한 달 동안, 7월16일에 시작해 한가위날에 심사를 했다. 그 결과 진 편은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남녀가 함께 모여 춤과 노래와 여러 가지 놀이를 했다. 널뛰기, 강강수월래(임진왜란 때 바닷가 마을에서 처음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닭붙잡기, 줄다리기 등을 했는데, 성리학적인 윤리관이 자리 잡아 남녀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조와는 달리 닭붙잡기, 줄다리기 등을 하다가 남녀가 함께 엉켜서 나뒹굴고 쓰러지기도 해 서로 크게 웃으며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놀이를 가배(嘉俳)라고 했는데, 가위라 하다가 가장 크다는 뜻으로 한가위라 불렀다고 한다. 오곡백과가 풍성해 농부의 인심마저도 풍족해지며 휘영청 달이 밝은 가을명절. 그래서 예로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햅쌀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로 먼저 조상들께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찾는 일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다. 명절 며칠 전부터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고향을 찾는 귀성객 행렬은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진풍경을 낳기도 하지만 쉽게 볼 수 없는 민족공동체의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하니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추석(秋夕)이나 중추절(仲秋節)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비롯된 한자말이고, '한가위'는 우리 고유의 말이다. 그러므로 한가위라 부르는 것이 더 좋을듯하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제사가 아니고 고유식(告由式)이다. 새로운 제철 음식으로 조상님을 뵙는 '예'의식이다. 한가위 음식으로는 송편과 토란국이 주된 음식이라고 하나, 기본은 '속절즉헌이사시식(俗節則獻以時食)'이다. 제 철에 나는 음식을 올린다는 뜻이다.

송편은 멥쌀 가루를 반죽해 넓적하게 편 다음 속을 넣고 반달모양으로 오무려 싼 후 솔잎을 깔고 쪄 내면 향긋한 송진향이 나는 맛있는 떡이 된다. 송편 모양이 반달인 것은 점점 커서 온전한 달이 된다는 미래지향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매사에 지혜롭게 교훈적인 의미를 담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드물게도 문헌에 의해 그 유래가 고증 되는 고유명절을 가졌으니 문화국민으로 긍지를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잊혀져가는 우리 고유의 것들.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 전통과 선조들의 숨결은 언제나 즐거운 마음의 양식이다.

한가위는 설, 한식, 단오와 함께 우리의 4대 명절이다. 온가족이 모여 즐겁게 보내고 오래 동안 찾지 못한 집안 어른들도 이 기회에 한 번 찾아보자. 그리고 한 번쯤은 명절을 맞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은 소외된 우리 이웃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작지만 따뜻한 마음의 정을 나누면 더 좋으리라.

정양자 울산향교·구강서원 지정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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