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우리 대학 구내에서 두 소녀가 아스팔트 위에 짓이겨지고 뇌수가 흘러나온 채로 숨져 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사건의 진상에 대한 궁금증 보다 먼저 역겨움과 불쾌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고 "그런 처참한 사진을 꼭 보여 주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 마저 느껴졌다. 이미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관련기사를 접하고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사진을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뇌리에 각인되었던 그 사진에 관한 기억도, 그 사건의 추이에 대한 관심도 바쁜 생활에 묻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다만 소파의 규정에 따라 미군에게 재판권을 이양한다 해도 그들이 제대로 된 재판을 해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걸었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 믿었고, 만약에 처지를 바꾸어 내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혹은 아프리카와 같은 먼 이국에 주둔한 한국군 사령관이라면 내 부하를 주둔국 재판권에 맡기기보다는 차라리 내 손으로 직접 처벌하고 싶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다렸다. 결과는 두 미군병사와 그 지휘관들에 대한 무죄평결이었다. 결국 나는 순진했고 몽상가에 지나지 않았었다.

 듣자하니 유가족들은 운전병의 음주운전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고, 당시 목격자들 역시 운전병의 얼굴이 술 마신 모습이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들을을 피하지 못한 주원인이 통신장애 때문이라는 미군측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 장갑차병들의 증언에 의한면 "장갑차와 통신장비는 운행 전에 반드시 안전점검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사고 당시 사용된 CVC 헬멧은 폭탄소음이 심각한 전장에서도 통신이 가능한 기기"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미군들이 두 여중생을 닭처럼 몰고 가다가 일부러 살해했다는 의심도 나왔다. 문제는 이러한 의문들이 그들만의 재판정에서 모두 무죄라고 판결했다는 것이며 더 큰 문제는 일련의 재판과정에서 우리측은 거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미군범죄가 발생할 경우 그것이 "공무"였는지, 아니었는지를 일본이 판단한다. 우리처럼 "공무"니까 참견 말라고 하는 미군의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지난 95년 주일미군이 일본소녀를 성폭행 했을 때 오키나와 도지사는 시민들을 모았다. 이 조그마한 섬에 모인 시민이 10만명 이었다. 그들은 손에 손잡고 성폭행 한 미군을 규탄했고 일본소녀를 위로했다.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까지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여론이 무서운 주일미군은 훈련을 하루 중단하면서까지 반성의 날을 선포했다. 그리고 소녀를 강간살인한 미군을 일본법정에 세우기 위해 형사재판관련조항을 개정하였다. 그런데도 우리의 정부당국자나 일부언론들은 마치 지금이 미군의 초코렛이나 얻어먹는 시대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지난 11월28일자 일부 신문 사설들에서 이러한 시대착오적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중앙일보는 "부시 대통령 사과 잘 했다"라는 사설에서 "주한대사를 통한 간접적인 형식의 사과지만 그 내용은 사건에 대한 슬픔과 유감, 그리고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한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다짐하는 등 진솔함과 진지함을 읽을 수 있다"라고 진단했고, 동아일보는 "부시 대통령도 사과했으니"라는 사설에서 "시위대는 자제해야 한다. 미군부대 진입 등 법에 어긋나는 과격행동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칫하면 누구도 원하지 않는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썼고, 조선일보는 "부시 대통령의 사과는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자극적 언사와 충동이 한·미관계 전체를 흔들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도대체 어느 나라의 언론인가. 누가 누구를 설득하려 하는가. 분노를 이해해야 하는 것도 그들이고, 양국간의 사법체계의 차이를 이해해야 하는 것도 그들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 따위 형식적인 사과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공조와 상호 평등한 한미관계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언론이고 또 그러길 원한다면 한국 국민이 아닌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과 동반자 관계를 원한다. 하지만 진정한 동반자 관계는 상호 평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자국민이 죽어도 개미새끼 죽은 것만도 못하게 취급되는 소파(SOFA)의 규정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후손들을 위해서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