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수확이 한창인 농부의 손길을 재촉이라도 하듯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같다. 지난 여름 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의 수난안전을 위해 백사장을 누비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쏜살 같다'는 옛 성인들의 말씀이 새삼 실감 난다. 이제 황금 들판이 옷을 벗어던지고 새하얀 함박눈을 기대해볼 겨울. 그런데 소방서에서는 겨울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11월은 '전국 불조심 강조의 달'. 소방관들의 손과 발이 더욱 바빠지는 시기다. 통계상으로 보면 겨울철에 화재 발생이 급증하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 소방서에서는 겨울을 맞이하는 작업을 서두른다. 각종 소방장비를 재정비하고 화재 취약시설에 대한 예방활동 등으로 소방관들은 1년 중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낸다.

특히 많은 사고는 안전의식 부족에 따른 인재(人災)가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대 시민 안전의식 함양을 위한 홍보 및 교육활동에 어느 때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이 안전을 위한 첩경임을 알기에 소방관들의 마음은 분주하기만 하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만물을 구성하는 근본요소로 흙(地), 물(水), 불(火), 바람(風) 등 4가지를 손꼽았다. 그런데 우리의 환경에서 없어서는 안될 이들 요소가 공교롭게도 인류에게는 재난의 원천이 돼왔으며, 부득불 우리 소방관들에게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자연을 지혜롭게 이용하면 인류에게는 더없이 풍요로움과 편리를 가져오지만 반대로 잘못 이용하면 그 만큼의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화재 건수 및 재난이 증가하고, 더욱이 현대의 고도화 된 문명사회에서 각종 위험요소는 그 범주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가 발생할 지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방화사건이 발생했다. 숭례문 화재(2008. 2. 10), 대구지하철 화재(2003. 2. 18)처럼 사회에 대한 불만을 방화라는 수단을 이용해 표출한 것이다. 방화의 동기는 개인적·사회적 복수, 범죄은닉, 보험사기 등 그 원인이 다양하며 우리 사회가 고도화·양극화 될수록 그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대다수의 방화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인간의 자발적인 동기에 의한 범죄이기에 예방대책 수립도 쉽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지난해 통계자료에 따르면 화재원인은 부주의 47%, 장치적 결함 29%, 방화 6%의 순으로 나타났다. 소방서에서는 화재 원인을 실화(Accidental), 방화(Incendiary), 자연재해(Natural), 원인미상(Undetermined)으로 크게 분류하는데,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실화 등 안전의식 부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설마 하는 안전의식 결여가 사고로 연결돼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고 난 뒤 후회하기 보다는 미리 점검하고 대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우선 자신의 안전의식 수준을 점검하고 가정, 직장 등 주변부터 안전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번 겨울철에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더욱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서로의 손을 마주잡았으면 한다. 인류가 불을 이용하면서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해온 이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이면에는 급속히 증가한 우리 사회의 불만과 위험은 도외시돼 왔다. 이제 브레이크 없는 기차에서 잠시 내려 우리 주변을 둘러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올 겨울은 우리의 터전인 흙(地), 물(水), 불(火), 바람(風)의 은혜로움을 잊지 말고, 이웃사람들이 불로 인한 피해를 당하지 않는 안전하고 따뜻한 겨울이 되기를 600여 울산 소방인을 대신해 기원해 본다.

김용근 울산 온산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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