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환경오염과 관련해 꼭 등장하는 지명이 있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과 함께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대표적인 환경오염 사고로 볼 수 있는 '온산병'의 온산. 1980년대 초부터 주민들이 건강상 이상증세를 호소하기 시작해 1985년 온산병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론의 쟁점이 된 후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온산병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고 있을까.

1974년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온산 국가산업단지는 1978년 고려아연 제련소, 1979년 온산 동제련소(현 엘에스-니코 동제련), 1980년 쌍용정유(현 S-Oil) 등 공장이 들어서면서 실제 상업적 가동을 시작한지 30년이 됐다. 온산병이 쟁점화되었던 1985년 석유화학 5개, 비철금속 5개 등 12개 업체의 공장이 가동되는 수준이었으나 2008년 9월말 현재 입주업체는 283개, 가동업체는 246개에 달하며, 고용인원은 1만명이 넘는다. 현재 가동중인 업체의 업종은 철강기계가 81개, 석유화학 64개, 운송장비 40개, 비금속 10개 등의 순이다.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 폐수와 폐기물의 양도 온산병 발생 당시와는 비교가 힘들 정도로 증가했다.

초기에 인식한 화학물질의 위해성은 가연성, 폭발성 등과 같은 가시적인 것이었으나 1960년대 이후 유기수은, 다이옥신, PCBs(폴리염화폐비닐) 등이 환경을 통해 사람에 노출돼 건강에 해를 끼친 여러 사고들이 발생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위해성과 이에 따른 관리 필요성이 제기됐다.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환경오염은 일차적으로 이를 취급하는 현장 작업자에게 건강상 해를 끼치며, 환경오염이 계속될 때는 특히 발달과정의 유아와 어린이가 우선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우리 아이들만은 살려주이소!'로 상징되는 온산병. 지금은 성인이 된 그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환경운동단체의 선동적 구호였을까, 아니면 온산병은 현재에도 진행중인 사건인가. 한국의 울산에서 발생한 온산병은 현재 이름만 남아있고, 아직도 그 원인물질과 사람에 대한 노출경로, 그리고 이에 따른 공중보건학적 영향에 대한 규명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온산병이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 스타 환경운동가의 등장 등을 가져왔지만 당사자인 주민에게는 무엇이 돌아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온산병의 원인을 과학적 방법으로 접근해 환경적·생태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밝히려는 노력이 충분히 진행되지 못한 이유는, 주민 집단이주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대처한 정부, 민주화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접근한 환경단체, 학계의 빈약한 인적 구성과 기술 수준 등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미래로 나아가는데 있어 지난 역사가 발목을 잡아서도 안되지만, 부정적인 경험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서는 더더욱 안되며 여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온산병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다시는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오염으로 주민의 생존이 영향을 받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할 경우, 언제가 됐던 그 오염의 주체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요즘 '울산학'이란 단어도 자주 사용되고 울산의 미래발전 방향을 도출해내기 위한 '울산학연구센터'도 있다. 울산의 미래를 위해, 과거 및 현재의 온산 주민과 국가산업단지 입주 기업의 발전을 위한 '온산학'도 연구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 포함돼야 할 주제 중 하나는 막연히 '환경성 질환'으로 어정쩡하게 결론을 맺고 넘어간 1985년의 상황을 극복하고, 유해화학물질 오염에 의한 온산병의 인과관계를 환경적·생태적 관점에서 밝히는 것이다.

김종설 울산대 생명과학부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