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모성본능에서 오는 젖물림 학습을 받고 차츰 자라나면서 밥상머리 학습에서 모든 예의범절과 살아갈 도리를 배우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살아가는 소중함과 집단생활의 질서학습을 습득하고 자연의 신비함과 호구지책의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게 된다. 좀 더 나아가면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으로 발전해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리고 늙어 가면서 이 세상 다할 때까지 평생학습의 평등 속에서 생을 함께 영유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은 유별나게 의도적 교육과 무의도적 교육을 병행해 일정한 시기에 규정된 학습을 받아 우주의 신비와 여러 생명을 통솔하고 발전시켜 특이한 체제를 구성하는데, 이 시기를 놓쳐 문맹으로 살아가면서 항상 소외되고 무시당하고 외로워야 하는 세대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일맥을 차지하며 존재하고 있음이 몹시 안타깝게 느껴진다.

여기에는 가정형편과 사회적 여건, 국운의 불행 등으로 인해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살아온 비운의 생애들이 있다. 이들의 서러움을 가슴 속 깊이 심어준 궁극적 원인은 일제 강점기라고 본다.

그 때를 한 번 더듬어 보면 식민지가 된 나라의 남자들은 나이가 많으면 보국대라 해 노동을 착취당했고, 장년층은 징용이라 해서 국토사업이나 전쟁터에 동원돼 군사용 물품을 운반하는 수송역할과 노역 잡부로 이용당해야 했다. 또 젊은 청년층은 징병으로 동원돼 총칼과 폭탄을 안고 생명을 담보해야 했으니 나라 안의 가정집 살림살이는 어떠했겠는가?

그저 힘없는 여자들과 철모르는 아이들만 남아 경험 없는 일에 종사하면서 상식 없는 농사를 지어야 했고, 기술 없는 산업을 꾸려가야 했다. 비참하고 처절했던 생활에 절망과 좌절 뿐 이었는데 공부할 엄두나 있었겠는가? 거기다가 흉년을 겹쳐 굶주림과 헐벗음은 처량함 그것으로 겨우겨우 목숨만 이어갔는데 학습한다는 여유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학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젊은 처녀들을 농락했다. 방직공장에 취직 시켜준다, 간호원으로 채용한다, 장병 위문단으로 활동한다 해놓고 강제 동원했다. 배 고파 허덕이는 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멋모르고 나섰던 것이 결국에는 정신대로 위안부로 청춘을 받쳐야만 했는데….

그래도 세월은 쉬지 않고 흘러 1945년 8·15 해방을 맞았고, 1948년 8·15 정부출범의 기쁨을 맞이했다. 지나간 쓰라린 일들은 언제 그랬는가 하고 고국을 찾는 실향민들의 어수선한 뒷바라지에 열심이었다. 그도 잠시 피비린내 났던 처참한 투쟁의 역사인 6·25사변 때도 그들은 상처를 봉합하면서 기워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음지에서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아들 딸 낳아 길러내며 조국 근대화에 아낌없이 바쳤다. 농경문화에서 산업문화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시켜 놓았다. 세계는 깜짝 놀랬고 이목은 대한민국으로 몰려 왔다. 그 위상과 수훈은 모두 문명세대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공이라 감히 힘주어 부르짖고 싶다.

지난달 31일 울산대공원 남문광장 학생자연관찰학습원에서는 아주 이색적인 축제 행사로 비문해 한글 미해득인들의 '평생학습축제 행사'가 열렸다. 주로 70~8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어린아이를 업고 앞세운 이방인 새색시들이었다. 울산시민학교과 늘푸른학교 두 곳, 함께하는 사람들 한티공민학교, 생명의 전화 등에서 줄잡아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날 생전 처음 만났으나 서로 눈웃음 주고 금방 어울리면서 기량을 자랑햇다. '예쁜 글씨 쓰기'와 '글짓기'가 실시됐는데 서로의 평소 실력을 머리로 짜내며 솜씨를 자랑했다. 꾸부정한 노인들이 잔디밭에 쭈구리고 앉아 연필 촉에 혀 끝으로 침을 발라가며 돋보기 너머로 어렴풋이 가물거리는 글자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가을바람은 단풍잎을 허공에 날려 이들의 머리 위를 감돌아 주면서 서글픈 마음들을 다독여 줬다.

평생학습, 이대로 좋은가? 좀 더 편리한 시설에서 현실에 적합한 교재와 자격을 갖춘 교사를 곳곳에 배정해 하루 빨리 까막눈에서 벗어나 남은 여생동안 창창한 밝은 날을 맞을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칠성 울산 남구노인복지회관 한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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