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일근 시인이 연말을 앞두고 "유혹적인" 산문집을 내놓았다.

 지난 1년동안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www.ulsan21.com)에 "시인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써왔던 산문을 가려내 한권의 책으로 묶은 〈유혹〉(새로운눈 펴냄)은 미지의 "그대"를 향해 쓴 연서 형식의 글이다. 홈페이지 속의 "시인의 편지"는 근래들어 매회 4천~7천회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네티즌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유혹〉은 "겨울편지" 10편으로 시작해 "봄편지" 10편, "여름편지" 10편, "가을편지" 10편으로 이어지고 그가 오랫동안 감성을 묶어두고 있는 경주 "감은사터에서 쓰는 편지" 12편으로 마무리된다. 매달 한편씩으로 구성돼 있는 "길 위에서 보내는 12장의 엽서"는 간지처럼 중간중간에 들어있다.

 각각의 편지에는 사진이 동봉돼 있다. 그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주로 꽃과 풀, 여행지, 생활용품 등 사소한 것들을 피사체로 삼았다. 사진가의 시각이 아닌, 시인의 감성으로 "트리밍"한 "프레임"이기 때문에 독특한 향기로 편지글을 받쳐준다.

 시인의 편지는 기다림, 그리움, 사랑, 삶에 대한 성찰을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내 생은 아직도 길 위에 있고 그 길 위의 생이란 기다림의 이음동의어라는 비밀하나를 알아버렸습니다. " 시인의 기다림은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운명처럼 찾아올 그 시간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서 있는 일이겠지요""(〈눈 내리는 외등 아래서〉 일부)

 "용원 바다의 봄 도다리를 먹으면 입안에서 봄꽃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땅에 뿌리박고 피는 꽃이 있다면, 분명 바다 속에서 피는 꽃도 있을 것입니다. 도다리는 제 살과 뼈 속에 그런 바다의 꽃을 담고 우리의 그물로 찾아오는 물고기일 것입니다. ""(〈3월의 엽서〉일부)

 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온 이후 〈바다가 보이는 편지〉를 시작으로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그리운 곳으로 돌아오라〉, 〈처용의 도시〉, 〈경주 남산〉,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등 시집만을 꾸준히 발간해온 그에게 〈유혹〉은 첫 외도다. 편지글이라고는 하나 서술적이지 않고 시처럼 짧은 산문이기 때문에 그의 시적 감성을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외도를 반갑게 즐길 수 있다. 정명숙기자 jm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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