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선택한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영광은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의 가장 큰 요인은 세대별로는 2,30대, 즉 전후 민주교육을 받은 세대가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5,60대 기성세대에 반기를 든 결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노당선자의 등장은 한국정치 패러다임의 새로운 전환을 의미하며, 정치개혁의 발목을 잡아왔던 3김정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드러났던 정당의 무력화 현상, 후보 개인의 경쟁력 대결 구도는 정치가 이미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노당선자의 승리는 이미 우리 사회가 격변의 흐름을 타고 있음을 말해준다. 노당선자의 승리는 이러한 흐름을 직감하여 적절한 선거홍보 캠페인을 전개한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승리요인의 하나이다.

 노무현 진영의 핵심전략은 감성적이며 포지티브(Positive)한 캠페인의 전개였다. 변화를 갈구하는 2,30대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메시지가 그 주요내용이었다. 여러 차례의 우여곡절을 헤쳐나가는 노무현이라는 상품도 이런 전략에 매우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90년 3당 합당 때 YS와의 결별, 95년 DJ 국민회의 창당 시의 합류거부, DJ당 간판으로 부산 선거에 출마해 세 차례나 겪은 낙선경험, 국민통합21 정몽준후보와의 단일화 합의, 그리고 25일의 단일화 성사 등"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생겨난 소신과 원칙을 중요시하는 노후보의 상품적 가치가 대통령 당선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노무현 진영의 선거캠페인 전략은 한나라당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한나라당은 도청문건 폭로를 시작으로 "불안한 노무현"이라는 구호아래 어린이를 태운 난폭 운전사의 버스를 달리게 하는 광고 등 네거티브(Negative)한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에 대한 노진영의 대응전략은 "눈물의 노후보"와 "기타 치는 대통령" 등 2,30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포지티브한 내용이었다. 선거캠페인에 있어서 노후보 진영이 결과적으로 승리를 이끌어내는데 이러한 긍정적인 메시지 전달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이 노당선자를 승리하게 한 또 하나의 주요 변수였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나라당의 비방과 중상은 곧바로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펴졌으나 대부분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오프라인은 조용했지만 노당선자 지지층이 많은 2,30대는 이미 인터넷을 점령하며 대세를 가름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당선자의 히트작으로 꼽히는 애니메이션 TV 광고 또한 인터넷 게시판에 한 노당선자 지지자가 올려놓은 만화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다. 선거자금 모금을 위한 돼지저금통 분양 역시 "노사모"회원이 인터넷에 올린 아이디어였다. 종래와 같이 유권자를 일방적(one-way communication)으로 조종하려 했던 게 아니라 유권자의 자발적 기운을 흡수해 재 방출하는 쌍방향 선거운동(two-way communication)의 첫 사례였던 셈이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선거무드의 조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월드컵 당시 시청 앞에 모였던 붉은 악마의 질서 정연함, 여중생 사망사건에 따른 평화적 촛불시위 등도 노당선자의 승리를 이해하는 하나의 코드가 된다. 노당선자의 한 핵심 참모는 "여러 측면에서 노후보가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우리의 메시지와 이런 사회적 흐름이 오버랩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축제는 끝났고, 앞으로 노당선자가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는 대선 승리때와 같은 감성적 호소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전후 세대의 변화에 대한 갈망과 안정적 국정운영을 바라는 기성세대의 침묵의 소리를 잘 조화시켜야할 새로운 책무가 이젠 노당선자의 어깨에 무겁게 부여된 것이다. 진실로 바라건대 2002년의 선택이 5년 후 축복으로 되돌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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