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성식 강남교육청 교육장
장애를 딛고 선 천재 화가 운보 김기창은 구상미술과 추상미술을 넘나들며 변신을 거듭한 한국 화단의 거목이다. 운보는 자신의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세 사람으로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를 꼽았다. 그의 외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잃고 77세까지 살면서 운보를 보살폈다.

운보는 보통학교에 입학한 7살 때에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신경이 마비돼 귀머거리가 되었다. 12살에 복학했으나 강의를 들을 수가 없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책에 새, 꽃, 사람, 개 등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들의 소질을 알아본 어머니는 목수 일을 배우게 하자는 아버지의 주장을 꺾고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그림을 배우도록 했다. 운보의 어머니는 3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지만 운보가 화가의 길로 들어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광복 이듬해 운보는 동료화가 우향 박래현과 결혼했다. 이는 그의 삶과 예술에 일대 전기가 됐다. 필담으로 의사를 교환하는 데 한계를 느낀 그는 우향에게서 구화법을 배웠고 후에 대학 강단에 서게 될 재산이 되었다. 아내의 작품세계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수 차례 부부전을 가질 만큼 화업의 동업자이자 인생의 반려자였던 우향이 1976년에 타계하자 그는 말할 수 없는 허탈에 빠졌다. 일생에서 가장 활발한 작업을 했던 게 바로 그 이후이다. 한국 화단의 거목 운보는 이들 세 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최초로 흑인을 새로운 대통령으로 뽑았다. ‘변화’를 앞세운 버락 오바마이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그의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이다.

오바마는 운이 좋았다. 오바마의 부모가 결혼했던 1960년대는 미국 전체 주 중 절반 이상이 흑인과 백인의 결혼을 중죄로 규정하던 때였다. 출생지인 하와이는 유색 인종에 대해 관용적이었고 그의 조부모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다.

오바마를 어릴 때부터 키운 외할머니 매들린 던햄은 오바마의 사실상 어머니였다. 던햄은 딸이 혼혈아를 낳자 외손자의 양육을 위해 하와이은행에서 비서 일을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입고 쓸 돈을 아껴가며 하와이 명문사립학교에 외손자를 보냈다. 오바마는 선거 기간 중 병세가 악화된 외할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선거 운동을 며칠씩 중단하기도 했다. 오바마가 오늘날 뛰어난 지도자가 되기까지 외할머니 역할이 가장 컸다는 게 중론이다.

피부색에 관대한 부모의 피를 물려받은 오바마의 어머니는 인종 문제에 대해서는 강인한 모습을 보였다. 어린 오바마에게 항상 흑인의 우수성을 가르쳤다. 틈만 나면 최초의 흑인 판사, 최초의 흑인 민권운동가들을 이야기했다. 세상의 차별로부터 아들을 철저히 보호하려 했던 어머니 덕분에 오바마의 어린 시절은 자신감과 희망으로 가득했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오바마의 어머니는 오바마가 인도네시아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매일 오전 4시30분에 깨워 3시간 동안 영어와 미국의 또래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을 직접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심어줬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는 거지를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거리에서 그들을 만나면 가진 것을 모두 나눠주었다. 그가 불안정한 가정과 낯선 환경 속에서도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대학병원 임원직을 그만두고 선거 운동에 뛰어든 아내 미셸도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로 충분하다는 평가다. 똑똑한 현실주의자 아내 미셸은 오바마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이다. 미셸은 시카고 흑인 전통 거주 지역인 사우스사이드에서 나고 자랐다. 흑인 사회에 뿌리가 없는 오바마에게 흑인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제공했다. 오바마의 외할머니가 오바마에게 미국의 뿌리를 심어주었다면 그의 어머니는 꿈을 심어주었고 그의 아내 미셀은 그에게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지금 미국 대통령에게는 경제난 극복과 국제적인 분쟁 해결, 그리고 미국 영광의 재현이라는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기에 미국인들은 ‘변화’의 오바마를 선택했다. 세 명의 여자가 있었기에 대통령 오바마가 탄생했다. 그 오바마가 곧 미국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최성식 강남교육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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