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절정에 올랐던 나폴레옹이 그의 어머니 앞에서 자랑했다. "나는 지금 황제입니다. 유럽의 절반은 내 법에 따르고 있고, 우리 형제는 국왕이며, 자매는 왕비가 되었습니다"라고. 그러나 어머니는 주름진 얼굴에 슬픈 미소를 지으며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가겠니"." 나폴레옹 보다는 그 어머니가 인생과 세월을 내다보는 눈이 한결 깊었던 것 같다.

 한국 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던 "동교동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당내 개혁세력은 개혁의 기치를 들고 세력재편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대변혁과 당내 권력장악, 지역주의 청산 등을 위해서라도 "동교동계"해체는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들의 확고한 입장이다. 이긴자의 당연한 권력의 법칙인 것이다.

 승자의 시각으로 보면 당내 최대 파워그룹이었던 동교동계와의 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노 당선자와 동교동계는 애증의 관계를 반복했다. 노 당선자측 일부 인사들은 동교동계와의 관계에 대해 "원칙의 범위 안에서 물흐르듯 갈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내부 기류는 이와 사뭇 달랐다. "낡은 정치세력은 당내에도 많다"고 우회적으로 피아에 대한 개념 정리를 했다.

 노 당선자은 이에 앞서 "김대중 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책임 있는 인사들은 법적, 정치적으로 응분의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며 이미 선전포고를 해놓았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임기가 끝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병풍역할을 맡을 수 없음이 확인됐다.

 김 대통령은 새해 첫 업무가 시작되는 2일 퇴임후 국내 정치 문제에 초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동교동계"라는 말의 사용과 모임 또는 이것을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뜻을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민주당 인사들에게 전달했다. 김 대통령이 자신과 30여년의 정치역정을 같이 해 온 "동교동계"가 소멸됐음을 천명하는 반면 새로운 정치질서 구축의 물꼬를 터주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다.

 결국 김 대통령은 다음 정권의 출범에 앞서 구시대 정치의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면서 퇴임후 국내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면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전직 대통령으로서 남북관계 개선이나 세계평화 증진 등 민족과 역사를 위한 역할에 전념하겠다는 의지가 "동교동계" 해체 지시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동교동계"는 김 대통령이 지난 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후 군사정권 시절 각종 박해와 탄압을 받을 당시 김 대통령을 따르는 측근과 정치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형성됐으며, 김 대통령의 자택 소재지인 동교동의 명칭을 따 그동안 그렇게 불려왔다. 이와 비슷하게 과거 민주화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을 추종하던 정치권 인사들은 "상도동계"로 지칭됐다.

 지난해 연말 모임을 가졌던 동교동계는 "상도동계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자던 동교동계가 어쩌다 ""라며 탄식을 쏟아냈다. 5년전 상도동계가 갔던 그 길을 가고 있는 동교동계는 "역사는 돌고 도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권력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소리 없이 다가왔다가 또 그렇게 소리없이 사라져 버린다. 주었던 것을 다시 뺏고, 탄생케 한 것을 사망케 하는 것이 권력이다.

서울=신재현 정치부부장대우 jhshin@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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