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둘러보는 자성의 날 되길

“교실에 코치만 있다” 걱정

▲ 윤정문 전 울산 강남교육장
오늘도 교단에서 땀 흘리시는 선생님께 존경과 위로의 인사를 드립니다. 선생님! 지난번에 5년간 대입수능시험 성적이 공개된 후 학부모들의 반응을 아십니까? 교육현장에 아직도 코치가 많다는 겁니다. 코치는 기술을 가르치는 기능보유자로서 그 기술은 손끝에서 일어나는 재주일 뿐입니다. 진정한 교육은 가슴과 가슴의 불꽃 튀는 교류와 감화를 통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훌륭한 교사는 학생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깊은 감화를 줘야 하는데, 뜨거운 가슴을 가진 교사는 적고 차가운 손끝만 갖고 있는 코치들이 교실에 있다는 게 학부모들이 걱정하는 이유입니다.

선생님! 제자들의 꿈과 인생항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선생님입니다. 아시안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이 된 반기문씨는 고교시절 영어 교사의 칭찬을 듣고 가슴이 뛰었다고 술회했습니다. “기문아 난 네가 외교관이 되면 참 좋을 것 같구나. 넌 영어도 잘하고 사람들과 잘 다투지 않는 성품에다 매너도 참 좋은 아이거든.” 교사의 칭찬 한 마디가 외교관의 꿈을 품게 한 계기가 된 것입니다.

몇 년 전 부산 광명고교 김지환 교사가 영도 뒷산에서 암벽을 타다 16m 아래로 떨어져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 전체가 울음바다를 이뤘고 빈소엔 500명의 졸업생이 몰려 왔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사제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보통인데 그의 죽음을 졸업생마저 애도했습니다. 단골 지각생은 출근하면서 집에까지 찾아가 등교를 시켰고 급우와 싸운 제자를 나중에 따로 불러 회초리로 50대를 때린 뒤 함께 눈물을 흘렸던 그를 아무도 폭력교사로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전 서울 용산고교 정낙식 교사는 2003년부터 담당인 국어과목 외 철학 미학 윤리학 사회과학을 따로 공부해 왔습니다. 논술지도를 염두에 둔 자구책이었습니다. 통합논술이 예고되자 다른 과목 교사들과 힘을 합쳐 예시문을 연구하고 교수법을 개발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대학입시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경북 안동시 풍산고교는 1968년 풍산상고로 개교, 한때 전교생이 800명에 달했지만 농촌인구 감소로 300명 선으로 떨어지자 30명의 교사가 머리를 맞댔고, 자율형 학교로 바꿔 학교를 살려 냈습니다, 5년 만에 전국 명문교가 되어 서울·경기에서도 학생이 몰려와 근래 97%가 4년제 대학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2008년 제13회 대한민국 학생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강원도 정선군의 예미초등 전교생 70명의 폐광촌 미니학교 어린이들이 대상과 최고상을 석권했습니다.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힘을 모으면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고, 특히 교사의 사명감에 따라 공교육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생님! 공교육 부실로 연간 약 15조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기러기 가족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전국 초·중·고 34만 명의 교원들이 설레는 가슴으로 교단에 발 디뎠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20대 1이 넘는 임용고사를 뚫은 교사들이 밤새워 수업준비를 하고, 담임 맡았던 제자 이름을 개학 전 몽땅 외었던 그 열정과 교육애의 초심으로 말입니다.

선생님! 일등과 꼴찌를 똑 같이 가르치는 교실이 업그레이드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교실은 그 옛날의 교실이 아닙니다. 질문이 사라지고 선생님 말씀에 빈정대는 학생이 늘어가고, 말로는 학생 중심 교육이지만 학생들이 ‘싫어’ ‘재미없어’ 하고 소리치면 시키지 않는 교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초학력이 부족하여 수학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학력이 바로 국력이고 경쟁력입니다. 교육은 협상과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선생님! 공교육이란 목도를 같이 멥시다. 목도의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먼데 선생님들을 보는 학부모들의 마음은 조급하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목도를 메는 데는 박자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한 발작도 갈 수 없습니다.

선생님! 곧 스승의 날입니다. 선생님께 기쁜 날이기 보다는 앞뒤를 되돌아보는 자성의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선생님들의 양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공교육의 내실화를 이뤄주시길 기대하면서 선생님들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윤정문 전 울산 강남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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