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영천 나들이

■ 도림사 비구니들의 손맛·비법 깃든 곶감 고추장·장아찌 슬로푸드의 진수
■ 인구 11만명에 자전거만 8만대 ‘두바퀴 도시’ 자전거 테마파크 조성 분주
■ 폐교에 예술혼 불어넣은 상주예술촌·시안미술관 대안미술관 가능성 엿봐
▲ 경북 상주시 서곡동 도림사로 오르는 길.
경북 상주 및 영천 여행은 울산여성포럼(대표 정명숙)이 진행한 2009 워크숍의 일환이었다.
이번 여행을 두고 포럼 회원들은 ‘도돌이표’라는 제목을 달았다.
패스트푸드 대신 슬로푸드, 자동차 대신 자전거, 폐교에 들어선 예술촌과 미술관 등 여행지 모두 느림과 여유의 미학을 일깨우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

◆도림사

상주시 서곡동 도림사는 장 맛과 장아찌로 유명한 절이다.

이름난 슬로푸드를 맛보기 위해 일행은 나지막한 산길을 20분 정도 걸었다. 쨍한 겨울바람이 뺨을 사정없이 때렸지만, 맑은 공기는 달기만 했다.

찬바람이 못내 걱정스러웠던지 스님들이 자동차를 몰고 산 아래까지 내려왔건만, 모두 물리고 일부러 걸어 올라갔다. 청정지역 첫눈을 맞는 행운까지 누리니 일행 모두 발걸음이 가벼웠다.

도림사 비구니들은 절간에서만 전하는 비법과 손맛으로 장을 담근다. 불당 건립을 위해 시작한 장 만들기 사업은 이제 겨우 햇수로 4년 차. 하지만 맛에 반한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이제는 한 해 수 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이다.

이곳 비구니들은 잘 선별한 콩으로 메주를 띄우고, 상주의 특산물 곶감으로 잡내를 잡는다. 그래서 탄생

한 것이 바로 곶감 고추장이다. 지천으로 자라는 야생초를 달인 물은 간장을 뺄 때 사용된다.

청국장도 산뽕잎 우려낸 물로 담는다. 특유의 청국장 냄새는 옅어지고 구수함만 남는다. 지난해부터는 더덕, 고들빼기, 취나물, 곰취 등 약초와 산나물을 이용한 장아찌류도 새로 내놓았다.

넉넉한 인상의 탄공 스님이 일행들을 모아놓고 ‘우리 맛, 우리 장’을 한참 소개했다. 드디어 점심시간. 한 점 장아찌와 된장국은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일행 모두 말도 잊은 채 배를 채웠다.

◆자전거박물관

자전거박물관은 자전거 바퀴를 절반으로 자른 반원형태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작고 왜소한 외관이라 살짝 실망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자전거도시 상주는 이미 녹색혁명으로 전국이 떠들썩해지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지난 2002년 개관한 자전거박물관의 확장공사가 한창이라고 한다.

온갖 투자로 화려한 시설 구비에 나선 후발 대도시의 자전거정책이 초라해 보이는 상주로 자전거 탐방을 떠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자전거박물관에서 만난 담당 공무원은 “상주 사람들의 자전거 타기는 정책적으로 권장해서, 레저나 헬스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도시환경이 만든 자연스러운 생활일 뿐”이라고 알려줬다.

▲ 도림사에서 맛 본 장아찌와 된장찌개.

상주인구 11만명에 자전거 보유대수는 8만대. 열 살 이상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결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상주에는 ‘시내버스’가 없다는 것. 도심 내 웬만한 거리는 모두 자전거로 이동이 가능했다. 전국이 자전거 열풍으로 달아오르기 전부터 상주에는 이미 자전거족을 위한 요철없는 도로가 완비돼 있었다고 한다.

담당 공무원은 “최근 상주 경천대 주변을 개발해 국민관광단지로 만드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라며 “자전거 테마파크로 변모할 경천대로 꼭 한 번 다시 들러달라”고 당부했다.

◆상주예술촌

자전거박물관처럼 상주예술촌 역시 폐교를 활용한 곳이다. 예술촌의 모습 또한 그다지 ‘예술’스럽지는 못했다. 운동장 가장자리의 아름드리 고목들이 오히려 더 시선을 끌 정도다.

하지만 이곳 예술촌은 그림, 조각, 음악, 서예, 종이공예,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 10명이 터를 잡고 있다. 폐교의 각 교실은 이들 작가 및 전문가들의 꿈이 실현되는 창작공간인 셈.

서양화가 김성석씨는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으로는 전기와 조명, 기본적인 배수시설 등 최소한의 생활편

▲ 시안미술관 3전시실에 설치된 김호득씨의 ‘공간을 느끼다’.
의시설을 갖추는데 모두 사용했다”며 “외관을 다듬기 보다는 창작공간의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방향을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상주예술인들이 십시일반 모은 회비로 조금씩 조금씩 시설투자를 하는 중이라고도 했다.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하는 관의 지원에만 목을 매기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예술촌을 이어간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영천 시안미술관

이번 여행 중 가장 아쉬운 곳으로 남은 곳, 바로 영천 시안미술관이다.

울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일 마지막 코스로 들른 방문지였는데, 낮시간대 미술관 외경을 감상하지 못한 점과 보다 오랫동안 머물지 못해 억울함마저 들 정도였다.

시안미술관은 폐교의 무한변신이라는 면에서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아 온 공간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외관을 다듬는 한편 유치하는 기획전의 수준이나 초청 작가의 면면도 만만찮았다. 아무

▲ 영천 시안미술관 내 어린이 미술체험교실(위)과 상주 자전거박물관.
도 찾을 것 같지 않은 문 닫힌 촌학교를 1급 사설미술관으로 변신시킨 관장이 누구인지, 또 그로부터 이 변화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해외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라 이마저도 아쉬울 따름이었다.

지난 주말 울산여성포럼 회원들이 방문한 날에는 때마침 한국화가 김호득씨의 ‘공간을 느끼다’전이 한창이었다. 한국화가이기는 하나 평면작업에 만족하지 않고 공간으로 작품을 이동 배치한 독특한 전시였다. 정적일 것만 같은 한국화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역동성이 강조되는 설치미술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1층 공간에 새롭게 만든 어린이 미술체험장도 마음이 끌렸다. 미술관 방문이 낯선 아이들을 위해 의자나 시소 등을 만드는 목공예 재료들을 갖추고 있었다. 하얀 목마가 달리는 체험장 천정과 화려한 벽보 또한 아이들에게 미술은 지루하다는 편견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글·사진=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 도림사 마당은 수 백기의 장독으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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