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오일쇼크를 기억하는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설적인 석유장관 ‘야마니’를 기억할 것이다. 하버드 법대를 나와 사우디아라비아 파이잘 국왕의 법률자문을 거쳐 25년 간 사우디 석유장관을 하면서 OPEC(석유수출국 기구)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석유정책을 이끌었던 사람이다. ‘제프리 로빈슨’의 책 ‘석유황제 야마니’라는 책이 요즘 이라크 전쟁을 맞아 관심을 끌고 있고, 각 신문의 책 소개란에 일제히 소개되고 있다. 이 야마니가 지난 2월 카이로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전쟁을 강행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스라엘과 석유를 얻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말했다고 한다.

 야마니의 말이 아니더라도 미국이 온갖 현란한 말을 하고 있지만 실은 석유확보가 전쟁의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왜 미국이 이렇게 석유에 집착하는가? 석유 소비 1위인 미국의 일일 석유소비량은 약 2천만 배럴이다. 1년이면 72억 배럴이 된다. 그 중에서 40%도 안 되는 28억 배럴이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석유로 충당되고, 나머지 60% 이상은 외국에서 들어온다. 연간 44억 배럴이 수입되는 것이다.

 전 세계의 연간 석유생산량이 270억 배럴이니 미국이 세계 석유 생산량의 25%를 소비하고 15%를 수입하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양의 석유를 수입하는 이유는, 미국의 산유량은 해마다 감소하는 반면 미국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먹어치우는 자동차문화는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은 1천1백억 배럴 가량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매장량 1조 배럴의 10%다. 게다가 양질이고, 쉽게 퍼 올릴 수 있다고 한다. 1천1백억 배럴이면 미국 매장량의 4배이고, 연간 소비량의 15배이다. 미국이 눈독을 들이는 것이 당연하다.

 부시는 석유로비의 막대한 돈을 정치자금으로 이용해서 권좌에 올랐다. 부통령 딕 체니나 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를 비롯한 부시의 측근들은 오랫동안 석유회사에서 일을 했다. 이들은 모두 석유회사의 주식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석유가격이 오르고 이에 따라 석유회사의 주가가 오르면 이들도 당연히 큰 돈을 번다. 그러니 부시정권과 석유회사들에게 이라크 침공은 석유로 돈도 벌고 "악의 축"도 하나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벌써 수출전선에 타격이 온다고 한다. 유가가 25달러였을 때 석유수입을 위해 지출했던 돈은 연간 2백억 달러였다. 만약 유가가 60달러로 오르고 60달러가 몇 달만 지속돼도 2백억 달러가 그냥 날라간다. 수출로 일년동안 벌어들인 돈의 절반 가량이 석유 대금으로 투입되는 것이다. 미국은 전체 에너지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21%밖에 안되지만, 한국은 55%나 된다. 절반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석유 가격이 오르고 석유부족 현상이 나타난다면 결과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일방적으로 미국만 돕고 아랍을 등지는 것은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에서도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닌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한국정부에서는 미국을 돕기로 결정했지만 민간차원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평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다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가 석유에 붙들려 있는 한 갈등과 분쟁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록펠러는 석유로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석유를 "악마의 눈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어떤 평범한 이라크인은 석유만 없었으면 이라크가 저 지경까지는 안되었을 거라고 한탄했다.  북한핵 위기도 결국 석유가 끊어진 탓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이 기회에 우리도 석유와, 석유에서 벗어나는 길에 대해서 한 번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설계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