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기업 탐방 - 9. 원전설비 기계분야 강자 일진에너지

원전 축소판 실험장치로 안전성 세계 입증
중소형원자로 표준설계인가 사업도 동참
신재생에너지 기기 전문기업으로 큰 도약
▲ 일진에너지는 화공기기 제작 보수를 주력으로 했으나 최근에는 원자력발전소 시험설비와 태양광 발전설비 제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에 위치한 일진에너지(대표 이상업·사장 이상배)는 지난해 12월 한국형 원전(APR 1400)의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이 성사되면서 주목받고 있는 울산의 에너지 설비 분야 전문 기업이다. 이 회사가 제작한 ‘가압경수로 열수력 효과 실험장치’(ATLAS)가 이번 수출을 성공으로 이끈 숨은 공신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ATLAS는 UAE에 수출하는 원전의 원자로 계통과 안전계통 등을 높이는 2분의 1, 배관의 총부피는 288분의 1로 상세하게 축소해 제작한 대형 실험설비이다. 쉽게 말해 이번에 수출하게 되는 원자력 발전소의 축소판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 설비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실제 발전소가 진도 8의 지진에도 견딜수 있음을 입증했다. 발전소의 안정성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인정하는 국제 기준을 넘어섰다. 이같은 안전성은 UAE 정부를 움직이는 계기가 됐다.

이상배 일진에너지 사장은 “ATLAS 제작에 3년 6개월이 걸렸고 금전적 손실도 있었지만 포기하기 않았

▲ 일진에너지가 인재양성과 기술개발을 위해 지난달 준공한 발전기술연수원.
다”며 “결과적으로 ATLAS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갖춘 우리나라 원자력 안전기술 자립의 이정표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일진에너지는 1989년 설립 이후 원자력발전소와 석유화학공단 등 국가 주요 기간시설의 설비 제작 보수분야로만 외길을 달려온 기업이다. 석유화학공장 등의 화공기기 제작에 주력했으나 최근에는 원자력발전 모의 실험장치,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기 등 신규 아이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기기 전문기업으로 변모했다.

일진에너지는 에너지분야에 대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 2월부터 한국기계연구소의 의뢰를 받아 원자력발전소에 설치되는 고온고압 밸브와 펌프의 성능 검증 시험설비의 국산화에 착수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용 기기의 성능을 인증해주는 시험설비가 구축돼 있지 않아 외국에서 원자력 기기의 성능을 인증받아 발전소에 공급해 오고 있다. 일진에너지가 이번 시험설비 구축에 성공하게 되면 국산 기기의 가격 경쟁력 확보는 물론 외화 획득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 일진에너지 본사가 있는 온산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화공기기 제작 공정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일진에너지는 또 2004년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아 중수로형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인 트리튬(삼중수소)을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는 ‘삼중수소 저장 용기’를 캐나다에 이어 세계 두번째 상용화했다. 그동안 삼중수소는 버려지는 가스였으나 저장이 가능해져 공항 활주로 유도등과 공항검색대 등에 사용되고 있다.

일진에너지는 최근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주요 파트너로서 중소형원자로(SMART) 개발사업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물(담수)과 전력을 동시에 생산할 수 있는 SMART는 대규모 원자력발전소 설치가 어려운 사막국가나 인구 10만의 도시에 적합한 시설이다. 실제 인도네시아, 칠레, UAE가 IAEA의 중재로 우리나라의 SMART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SMART를 도입하기 전 성능 점검을 요구함에 따라 일진에너지는 대우건설, 포스코 등과

함께 중소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SMART의 표준을 만드는 민간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SMART 설립 비용은 1기에 7000억원에 이르며,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1000여기의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시장성도 밝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시험용융합원자로(ITER) 사업도 일진에너지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다. 핵융합에너지는 위험성이 높은 핵분열에너지와 달리 미래의 청정 녹색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핵융합원자로의 주원료는 삼중수소로 이 가스의 저장장치 기술을 갖고 있는 일진에너지는 그만큼 유리한 상황이다. 일진에너지는 현재 핵융합원자로 시험설비를 제작하고 있다.
<아틀라스=TLAS:가압경수로 열수력 효과 실험 장치>

[인터뷰]‘사람과 기술’ 기업발전 원동력...기술력 자립땐 미래 성장 확신
단순 기계제작·보수론 기업 성장 한계

원자력연구원서 시험용 설비 의뢰 계기
에너지분야로 눈 돌려 경쟁력 높이기로

에너지 전문 기업 일진에너지 이상배(58·사진) 사장은 사람과 기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기술개발과 동시에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기업이 발전한다는 것은 이 사장의 지론이었다.

특히 기술의 경우 제조업은 이미 독일과 일본 등 선진국들이 월등한 기술력을 갖고 있는 만큼 세계 각국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에너지분야의 기술개발에 적극 나서야 미래의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사장과의 일문일답.

-에너지분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게 된 계기는.

“1990년대 초반 단순한 설비 제작 보수로는 기업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훗날 세계에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고민하던 중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시험용 원전 설비 제작을 의뢰했다. 돈이 안됐기 때문에 직원들이 반대했지만 제작하기로 했다. 에너지분야가 미래의 블루오션이 된다고 생각했고, 국가 차원에서 기술자립이 필요하다는 사명감이 작용한 것 같다.”

-원전사업의 가능성과 앞으로 계획은.

“에너지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다. 그만큼 시장이 크다. 이번 UAE 수주를 통해 중소형원자로(SMART)를 다시 보게 됐다. 건축기간도 짧고 비용은 덜 드는 데 수요는 엄청나다. 시장성이 큰 만큼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핵융합원자로와 태양광 발전도 주목하고 있는 사업 분야이다. 지금 중국 상해 엑스포에서 자체 기술로 만든 첨단 태양광 발전 장치 2종류를 전시하고 있다.”

-경영철학이 왜 사람과 기술인가.

“10년전 연구원들은 이론을 현실화할 설비와 장치가 필요했지만 이를 제작할 기업들은 거의 없었다. 일진에너지는 낮은 사업성에도 불구하고 진출해 지난 10년간 박사급 연구원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지금은 우리만의 탄탄한 기술력과 인적 네트워크가 구성돼 있다. 에너지분야가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진출하려는 기업은 많지만 기술력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술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사람과 기술에 대한 투자는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 득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글=서대현기자 sdh@ksilbo.co.kr  사진=김경우기자 wo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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