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김우태

햇살이 손가락에 잡히는 아침입니다

나뭇잎이 물 뽑아 올리는 소리 들립니다

풀잎이 파르르 이슬 떨어내는 소리도 들리구요

배부를 때는 절대로 듣지 못하는 소리

쪼르륵 쪼르륵 내 몸 소리도 들립니다

한 사나흘 굶어볼 요량입니다

어찌 압니까?

한 사나흘 나 아닌 나를 만날지.

(시와 사상, 2000년 여름호)

요즘은 사라진 우리 말. 보리고개. 먹을 것이 귀해 겨우겨우 연명하던 시절이 얼마나 됐다고. 요즘은 먹을 것이 너무 흔해졌다. 이것저것 너무 많이 먹어서 너도나도 비만체질이 돼버렸다. 넘치는 살을 주체하지 못해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이어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한다. 심지어 살을 빼려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많이 먹어서 정신이 혼미해 졌는지. 세상에는 희한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 사나흘 굶어보면 어떨까? 뱃속에서 쪼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쯤에 정신이 맑아지고 세상이 다시 보일지.

강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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