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유물들을 소장해 온 바그다드의 이라크 국립박물관이 무차별 약탈로 빈 껍데기만 남았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유네스코를 비롯해 전세계 학자들이 이라크전쟁으로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그렇게 경고했건만 결국 불행한 사태가 초래되고 만 것이다. 약탈자들은 손수레까지 끌고 와 황금사발, 황금잔 등 고대 왕국의 보물들은 물론 고대문자가 새겨진 점토판까지 실어 내갔다고 한다. 전쟁의 파괴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하는 대목이다. 임진왜란, 한국전쟁 등으로 많은 문화유산을 약탈당하고 훼손시킨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 남의 나라 일이라고 나몰라라 할 수 있을까.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발상지인 이라크는 수메르 등 고대도시들을 비롯한 유적지만 1만개소에 달하는 문화재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걸프전 이후 이라크 전역의 박물관들은 약탈 위협에 처해 왔으며 고대 유물들이 스위스 암시장을 거쳐 해외로 반출돼 왔다는데 이번 이라크전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됐으니 이제 남아날 이라크 문화유산이 있을까 싶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지 못한 이라크나 약탈현장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수수방관한 미국 모두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난의 화살을 받을만 하다. 특히 외국 문화재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소문났으며 박물관문화국임을 자랑하는 미국이 이라크 문화재를 적극 보호하지 않아 박물관이 초토화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은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바그다드 국립박물관의 약탈사태는 이라크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미국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미국은 이라크의 박물관과 문화유적들을 군사작전의 최우선 순위에 포함시켜 끝까지 지켰어야 했다.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미국 국무장관이 이라크의 약탈된 유물 회수 및 파괴 시설 복구에 힘쓰겠다고 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를 계기로 모든 나라가 문화유산 지키기에 힘썼으면 한다. 문화재는 특정 개인이나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산물로서 인류 공동의 유산 아닌가. 우리나라는 물론 각국 박물관이 이번 바그다드 국립박물관 약탈사태를 계기로 어떤 상황에서도 문화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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