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필자에게 전달된 "형사재판충실화방안"이라는 전국법원장간담회 보고서는 그 첫 페이지를 다음과 같은 어느 신문의 사설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법원, 특히 형사재판 법정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누구나 느끼는 게 한 가지 있다. 재판정에서 행해지는 재판 내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정에 앉아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판사 검사 변호사가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형사재판은 99%의 경우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위한 의식처럼 돼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형사 사법이 왜곡돼 버린 근본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법원이 형사재판의 주도적 기능을 수사기관에 넘겨준 채 재판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추인과정처럼 돼버린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어서 위 보고서는 우리의 현재의 형사재판 운영방식이 비록 많은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는데 있어서 나름대로 장점을 보여왔다고 하더라도, 그 재판과정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낙후되어 있음을 솔직하게 자성하고 있다. 사실, 법원에서는 이미 2002년 초부터 위와 같은 깊은 자기반성 아래 ‘새로운 형사재판실무’라는 기본지침서를 만들어 형사재판에서 많은 변화와 개혁을 시도하였다. 위 기본지침서에서 강조한 방향은 다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인신구속과 관련하여서는 불구속재판의 비율을 높여야 하고, 둘째, 법정에서의 심리를 충실하게 하고 피고인의 절차적 권리를 강화시켜야 하며, 셋째, 온정주의적 태도를 지양하고 법관들 사이의 양형의 편차를 줄이는 등 양형의 적정성을 확보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 한 해 동안 법원의 이러한 노력이 피고인이나 일반 국민들에게 변화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지는 못한 듯 하다.

 그리하여 올해 초부터는 특히 법정에서의 재판과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전국의 형사재판담당법관을 대폭 증원하여 사건 수를 줄여 주고, 형사재판담당법관의 경우 1주일에 2일씩 재판을 하도록 하여 사건 하나 하나에 대하여 법정에서의 심리시간을 2배로 늘렸다. 그리고 그러한 여건 위에서 "법원의 입장에서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입장에서 그 날은 오직 피고인의 사건 하나만이 중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진행방법, 아주 전형적이고 간단한 자백사건이라도 모두 세밀하게 논고와 변론을 함으로써 하나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한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정성스럽게 갈무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재판절차"로의 변화를 독려하고 있다.

 울산지방법원에서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형사재판담당법관의 증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주일 2일 재판을 전격적으로 실시하고 그로 인하여 법정에서의 심리시간이 2배로 늘어난 만큼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소를 끝까지 경청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의 경우에는 피고인이 지켜보는 공개된 법정에서 세밀하게 증거조사를 실시하여 유무죄를 가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수시로 간담회를 개최하여 법관 각자의 노력을 재점검하면서, 동시에 강도 높은 양형토론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양형의 편차를 없애 나가기로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법원의 업무량이나 1주일에 1일 재판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버린 오랜 업무처리관행을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놀라울 만큼 엄청난 변화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위 보고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형사재판에 임하는 법관의 기본적인 자세를 언급하면서, 문서화된 조서를 맹신하는 경향은 없는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대원칙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는지를 법관 각자가 스스로 다시 한 번 더 반문해 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형사재판운영이 좀 더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함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가 되었다. 가장 부끄러운 모습, 가장 숨기고 싶은 부분까지도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일선의 법관들에게 분발을 촉구한 위 보고서는 그 결연함 때문에 필자에게는 마치 최후통첩과도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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