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울산 성남동에 반공교육관이라는 것이 있었다.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일년에 한차례 정도는 이 곳을 견학하였던 기억이 있다. 무장공비들이 이승복이라는 어린이를 칼과 돌로 죽이는 그런 끔찍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었고, 당시 나라에서는 이렇게 죽어간 소년이 남긴 외마디 말을 기억하게 하면서 그를 반공소년으로 높여 부르게 하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더니 이제는 누구도 반공이나 반공소년을 이야기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어린 여중생 효순이와 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의해 윤화를 당하는 참혹한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서 나라 전체가 반미 시위로 한차례 심하게 술렁였고, 각 대학의 대자보에는 이들 여학생들이 참혹하게 쓰러져 있는 모습들이 사진으로 찍혀 전시되고 있었다. 어린 생명들이 이처럼 어이없이 죽어간 광경을 생생하게 사진을 통하여 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군들 비통한 심정으로 반미를 왜치지 않았겠는가라는 생각이다.

 이 두 사건을 놓고 보면 일견 ‘참으로 많이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하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분명히 이전에는 미군에 의한 우리국민의 희생이 없었다가 근자에 그러한 것이 나타나는 것도 아닐 것이고 또한 북한에 의하여 우리 국민이 상하는 일 역시도 이전에는 있었다가 근자에는 없어진 것도 아닐 것이다. 90년대 초반에 윤금이씨가 미군들에 의하여 강간을 당하고 살해된 것이 근자에 문제되는 것을 보면 미군에 의한 우리국민의 희생은 10년 전에도 여전히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에는 오히려 더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또한 작년에 서해교전으로 우리의 젊은 목숨들이 상한 것을 생각하면 북한 역시도 우리의 안보에 있어서는 여전히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미군들에 의한 우리 국민의 희생이 자심하던 그 때는 오히려 어느 누구도 나서 그러한 현실을 말하려 들지 않았고,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억울한 사연들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그리고 모두들 미국은 우리의 절대적인 우방이라고 찬사를 보냈고, 미군이 철수한다고 으름장을 놓자 발목을 잡으면서 애걸복걸하였던 것이 불과 얼마전의 우리 과거사이다. 반면 북한이 서해에서 우리 청년들을 살상하고 근자에는 공공연하게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라고 공언하면서 주변을 위협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이에 대하여 말하려 들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재사인 것 같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둘 다 변화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헷갈리는 상황의 근원은 우리 사회의 생각이 변한 탓이 아닐까 한다. 이를 두고 혹자는 ‘개혁이 성취되었다’라고 할 것이다. 헌데 이러한 차이점 외에 양자간에는 또한 엄청난 공통점도 있다. 어린 소년과 소녀가 그것이고, 이들의 처참한 죽음의 광경이 가감없이 생생하게 대중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의 근본적인 원인이나 이유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각기 ‘멸공’과 ‘멸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러한 비극을 훌륭한 소재로 활용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는 점이다. 결국 반공에서 반미로 그 방향은 분명하게 바뀌었는데, 그 행동과 사고의 틀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정작 우리가 변화시켜야 할 것은 우리의 행동과 사고의 틀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랜 군부독재와 선동정치가들이 위정자로 집권을 하면서 박살과 타도는 있었지만, 공존과 상생은 없었다. 군인이든 선동가이든 그들이 드는 깃발 아래 모여들어 상대를 없애고 승리를 쟁취하는 데는 익숙해졌지만,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와 타협하고 함께 사태의 원인에 대하여 고민하고 분석하여 답을 찾는데는 거의 잼뱅이였던 것이 우리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좀더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 길은 ‘반공’이든 ‘반미’든 ‘우’든 ‘좌’든 이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인정하고 나라의 현안문제들에 대하여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익혀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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