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근로자의 날. 근로의 신성함을 기리고,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한 날이다. 그런 오늘 나는 일을 갖지 못한 사람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 청년실업문제... 우리사회에서 다른 문제들 보다 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한 신문에서 취업이 되지 않는 사실을 비관한 한 청년이 자살하였다는 기사를 읽고는 그 청년이 느꼈을 외로움과 소외감을 생각하면서 더없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살아온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그의 앞에 놓여져 있는데,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 청년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을 멀리 했을까? 과연 우리들은 그에게 좀더 강했어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실업자의 입장에서 상념에 잠겨본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세상은 정말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다들 그 속에서 분주한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저들은 이세상의 주인이다. 고통도 있고 즐거움도 있겠지만, 어쨌든 저들은 자신의 손으로 이 세상의 일을 하면서 삶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할 일이 없을까? 할 수 있는 일도, 맡겨지는 일도 없다. 하릴없이 번화가를 헤매기도 하고 조금 받은 용돈으로 오락실에서 시간을 죽이거나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아직 이 넓은 세상에 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실감과 외로움 때문에 가슴에는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얹혀져 있는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세상에 바라는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을 것 같은데 정작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일한 대가로 받는 봉급의 고마움도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 일한 대가가 고작 이 정도인가 하고 항의하거나 불만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도 갖지 못했다. 이런 상태의 자신에게는 장래의 설계도, 그리고 흔히 꿈꾸어 보는 소박한 일상에 대한 희망도 꿈꿀 수없다. 앞으로 나에게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여기는 바쁘게 움직이며 희망과 고통을 노래하는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다."

 20여년 전의 오늘은 무수한 정치적 변화와 많은 노동문제로 사회는 혼란스러웠고, 대학은 문을 닫기 일쑤였으며, 노동절인 오늘은 어김없이 집단시위가 벌어지던 시대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였기에 나의 개인적인 삶은 그러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추억처럼 하면서 지금은 행복한 시절이라고 하는 순간, 옆에 있던 한 청년이 불끈 화를 낸다. 선생님은 IMF세대의 상실감을 아느냐고... 어떠한 사회적 보장도 보호도 없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서 있는 자신들의 소외감과 어쩔 수 없는 좌절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인 있느냐고...솔직히 나는 그 세대가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적어도 그들은 학문의 자유와 생활의 안락함을 향유하면서 성장한 세대이고, 지금도 적어도 배고픔 때문에 고통 받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외로움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심각한지도 모르겠다. 배고픔을 해소하는 것만이 삶의 조건이던 시대는 더 이상 아닌 것 같다. 미국의 직업훈련파트너십법 프로그램이나 노동력투자법(WIA)프로그램, 영국정부의 뉴딜프로그램, 호주의 Dole프로그램 등등 세계적으로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떤 사회문제도 그것이 우리들 인간의 문제인 이상 중요성의 우선순위는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물론 사회가 모든 것을 다 책임질 수는 없지만 누군가 어떤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그것이 조금이라도 사회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면, 우리는 다같이 그러한 아픔을 공감하고 그 아픔을 해결할 수 있는 따뜻함을 가질 수 있어야겠다. 그 한사람 한사람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사회가 강하고 능력 있는 당신들만의 천국이 아닌 우리 모두의 천국이 되는 그런 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 소망스럽다. 근로의 이면에 놓여있는 실업의 한 단면을 생각하며 오늘은 마음이 조금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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