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로 정리하는 울산이야기] - 8. 마지막 불매꾼 고(故) 최재만 옹

정상태 울산문화연구소장 30년전 최재만옹과의 만남
반세기 동안 잊혀져온 쇠부리 불매노래 원형복원
2006년 서사리 가마터 발견 등 쇠부리 역사 재조명 지속 노력

에야여루 불매야 어절시구 불매야
불에편수 불매야 놀아보자 불매야
쇳물난다 불매야 디뎌봐라 불매야
-고 최재만 옹으로부터 채록한 불매노래 중에서

울산의 철 생산은 삼한시대부터 시작됐다. 쇠의 산지는 현재의 울산시 북구에 있는 달내(달천)철장. 이곳에서 철성분이 많이 함유된 달천의 토철을 용광로에 넣어 판장쇠(쇳덩어리)를 만들었다.

▲ 최후의 불매꾼 최재만 옹의 생전 모습.

철 성분이 다량 함유된 광물을 녹여 쇠를 뽑아내는 제련 작업을 ‘쇠부리’라 하고, 쇠부리 종사자들이 부르던 노래를 불매소리라 한다.

그런데 의문점 하나. 근대화 과정에 자취를 감추어 반세기나 맥이 끊겼던 불매소리와 쇠부리는 어떻게 재현될 수 있었을까. 그 중심에는 정상태 울산문화연구소장과 이 시대 마지막 불매꾼이었던 고(故) 최재만 옹과의 숨은 인연이 있었다.

◇ 30년 전, 최 노인과의 만남

불매대장과 편수들의 작업 과정을 경험과 구술을 토대로 재현해 낸 것이 울산 달내 쇠부리놀이다. 쇠부리 과정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지만 그 가운데 특히 풀무를 밟아 바람을 내는 불매꾼(풀무꾼의 경상도 사투리)의 역할은 대단했다. 8명씩 1조가 되어 선거리(선조), 후거리(후조) 모두 16명의 불매꾼이 불매질을 하면서 힘을 돋우고, 불매꾼의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소리를 내었는데 그 것이 바로 불매소리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1년, 당시 울산MBC에 근무했던 정상태 울산문화연구소장은 이 시대 마지막 불매꾼인 고(故) 최재만(당시 81세)옹을 만나는 행운을 만났다.

전통 및 향토문화 등 사라져가는 것들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정 소장에게 불매노래를 부르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노동요인 불매노래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쇠부리의 맥이 끊어진 지 이미 반세기가 훌쩍 지난 터였다. 그 노래를 직접 불렀을 쇠부리꾼들의 행방은 묘연했고, 그나마 전해내려 온 노랫말 또한 할머니들이 어린 손자를 어르거나 재울 때 불러주는 짤막한 후렴구 뿐이었다.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불매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하니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 일입니까.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채록을 위해서 현장을 다녀보니, 내 직감이 적중했지요. 바로 이 시대 마지막 불매꾼을 그 곳에서 만난 겁니다.”

◇ 마지막 불매꾼, 고 최재만

물어물어 찾아 간 곳, 울주 두서면 인보리의 최재만 옹은 동네에서 ‘불매 최생원’으로 통했다. 달내 토철광산 개발 이후 최후의 불매꾼으로, 유일하게 최 노인이 쇠부리터 노동요를 기억하고 있었다.

달내 토철 광산에서 나온 판장쇠는 솥이나 농기구로 만들어졌다. 불매 최생원은 지난 날 솥 생산으로 이름난 두서면 내와리 중점 마을에서 판장쇠 또는 무쇠솥 만드는 과정의 부리업에 종사하며 불매를 디뎌 온 불매꾼이었다.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열 서너 살 때부터 남의 집일을 해주며 하루하루를 어렵게 지내오다 20세가 넘어서야 당시 살고 있던 내와리 익쇠부리터에서 간헐적으로 일해 온 게 인연이 닿아 스물 대여섯살 때부터 내와리 중점의 익쇠부리업이 끝난 때까지 불매판을 밟는 불매꾼으로 활약했다.

쇠를 녹이는 일이 시작되는 날부터는 불매꾼들은 쉴새없이 불매판을 밟아야 했다. 한 부리가 시작해 끝날 때까지는 보통 100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그 동안 불매꾼은 조금도 느슨함이 없이 계속 힘을 내 불매질을 해야 하는데, 정식 불매꾼 외에도 몸이 아프다던가 용변 또는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울 때를 대비해 보조 불매꾼을 두기도 했단다.

“쇠부리터의 불매꾼은 8명씩 1조가 되어 16명이 번갈아 불매를 밟는데, 불매노래를 부르며 불매꾼들을 이끄는 불매대장이 바로 최재만 옹이었어요. 불매 대장은 불매노래를 별나게 잘 불러야 하고, 불매판을 밟는 다른 불매꾼들의 행동을 일치시키는 역할을 수행했으니, 불매노래를 완벽하게 부를 수 있었던 겁니다.”

최 옹의 자식들도 아버지가 그런 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을 한 참 뒤에 알았다고 한다. 혹여 쇠부리터 불매꾼으로 일한 전력이 알려져 자식들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염려를 한 탓이다. 평생을 입 밖에 내지 않다가 팔순을 훌쩍 넘긴 어느 날, 방송국에서 전통 쇠부리의 기원을 찾고자 하는 열혈 PD를 만나 비로소 잊혀졌던 불매노래를 다시 부르게 된 것이다.

▲ 울주 두서면 인보리 인근을 지날 때마다 정상태 소장은 이 시대 마지막 불매꾼 고(故) 최재만 옹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30년 전 만난 최 옹은 그에게 잊혀진 불매소리를 남겨주고 세상을 떠났다.

최 옹의 불매노래는 정 소장에 의해 ‘마지막 불매꾼, 끊어진 맥을 잇다’라는 주제로 방송을 타고 널리 알려졌으며, 그 방송분은 정 소장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기도 했다.

◇ 쇠부리의 흔적, 계속 찾아야

쇠부리에 대한 정 소장의 열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지난 2006년 10월 울주군 범서읍 서사리 옥녀봉 산자락에서 원형에 가까운 쇠부리 가마터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서사리 내사마을 청년회장이었던 김종렬씨의 제보로 시작된 쇠부리터에는 본보 취재팀도 동행하여 역사적 의의와 학술 재조명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라질 뻔한 불매소리의 맥을 잇는데 미력한 힘을 보태었다는데 보람을 느끼고 있지요. 쇠를 녹이던 쇠부리터는 그 흔적만 남아 옛 영광을 대변합니다. 쇠부리의 역사는 곧 울산의 역사입니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구해 나갈 생각입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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