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대산 불다람쥐’ 방화 현장검증

16년 전 우연히 갈대숲에 꽁초 버리면서 쾌감

이후 20일간 네차례 방화 저지를 정도로 빠져

정신과 치료도 고민…범행이 들통날까 포기

▲ 동구 봉대산 일대에 산불을 낸 혐의로 울산동부경찰서에 검거된 일명 ‘봉대산 불다람쥐’ 김모씨(오른쪽)가 28일 봉대산에서 방화를 재연하는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김동수기자 dskim@ksilbo.co.kr
28일 오후 1시42분 울산시 동구 남목마성 앞.

일명 ‘봉대산 불다람쥐’로 불리던 김모(52)씨는 승합차 앞에 진을 친 취재진을 보고 잠시 움찔하더니 경찰과 함께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이곳은 지난 1994년 12월3일 오전 4시 김씨가 처음으로 불을 지른 곳이다. 당초에는 최초 방화 시점이 1995년이라고 알려졌지만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일성 주석이 죽은 해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당시 길가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던 김씨는 아무 생각 없이 피다 만 꽁초를 갈대숲으로 던졌다고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렸지만 불은 나지 않았다. 이상한 쾌감을 느낀 김씨는 라이타로 직접 나무에 불을 붙였다. ‘봉대산 불다람쥐’의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김씨는 자신이 직접 지른 불을 보면서 세상의 시름을 잊었다 했다. 경찰 관계자는 “불을 보고 가슴이 뛰는 것을 즐겼다고 말했다”면서 “집에서 가까운 곳은 직접 구경하고, 먼 곳의 산불은 진화차량이나 헬기를 보고 위안을 삼았다”고 말했다.

‘봉대산 불다람쥐’는 잦은 방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이상하리만치 흔적과 증거를 남기지 않아 날쌘 ‘다람쥐’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러다 잡힐 수도 있겠구나’라고 직감한 김씨는 자신이 자리를 뜰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몇 가지 수단을 고안했다. 심지를 길게 늘인다든지, 불을 붙여 먼 곳으로 던지기도 했다. 도구는 모두 불에 타 사라질 수 있는 것들로 마련했다.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은 남지 않은 결정적 이유다.

경찰은 모방범죄를 우려해 범행 수법을 직접 공개하지는 않았다. 장소를 몇 군데 옮겨 현장검증이 이뤄졌지만 도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순간 뿐이었다. 김씨도 도구를 촬영하는 것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김씨는 “누가 이것을 보고 따라할까봐…”라고 말끝을 흐렸다.

불이 난 풍경에 쾌감을 느낀 김씨는 최초 방화 이후 몇 차례까지는 마른 풀에 직접 불을 붙이는 수법을 사용했다. 두 번째 현장검증이 이뤄진 남목 현대아파트 뒤 야산은 김씨가 네 번째로 방화를 저지른 곳이다. 김씨는 최초 방화 뒤 불과 20일 동안 네 차례나 불을 질렀을 만큼 방화에 빠졌다. 출·퇴근길 뿐만이 아니라 점심시간에도 잠깐 나와 불을 질렀다. 막연한 불안감을 느낀 김씨는 한때 정신과 치료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이미 저질러놓은 일이 밝혀질까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현장검증 중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현장검증을 한 곳에는 산림이 아예 사라졌거나, 아직 싹도 틔지 않은 새 묘목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구청에서 따라온 도시공원과 직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근처를 둘러보고 있었다. 16년 전, 한 사람의 재미로 시작된 방화의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김성수기자 ks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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