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뙤약볕이 내리쬐는 모래밭에 뒹굴며 지침 없이 하던 놀이가 있다. 모래에 조막손을 묻고 손을 두드리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라고 조심조심 읊으대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 해보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즐겁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두꺼비에게 대놓고 윽박지르며 속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리고 두꺼비가 과연 헌 집을 받고 새 집을 줄만큼 어리석은 녀석이었을까?.

 요즘 우리는 하도 보아 온 일이라 낯설지 않은데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보고 있다. 이른바 정치권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당놀이"가 그것이다. 필자가 이를 두고 신당놀이라 하는 것은 그들이 집이나 다름없는 정당을 짓고 허무는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천부당 만부당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 중 절반 이상이 마음에 드는 정당이 없다고 하는 형편이다. 기껏 최대 지지를 받는 당이라 해야 30%를 넘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사정은 우리 지역사회도 마찬가지다. 경상일보 창간 14돌맞이 울산시민여론조사결과도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17대 총선을 불과 열 한달 남겨둔 이 시점에서 새 집을 짓자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현재의 집권여당은 비록 정권은 얻었지만 소수정당이다. 개혁을 지상과제로 삼는 참여정부로서는 이 여소야대의 구도를 깨지 않고서는 개혁은커녕 참신한 변화조차도 어렵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힐 법하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이 신당 논의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찌 이다지도 변하지 않고 그 때 그 모습인지 놀라울 뿐이다. 먼저 신당 논의과정에 오가는 말들을 들어보자. 주류·신주류, 지역주의 극복, 전국 정당, 보스·패거리 청산, 진성 당원, 상향식 참여정당, 그리고 백의종군까지, 어느 것 하나도 길게는 87년 이후 짧게는 5년 전에 듣지 않은 말이 없다.

 단 하나도 이루어진 것은 없는데 꼭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속을 보면 다소 뻔하기도 하고 한편은 복잡하기도 하다.

 속이 뻔하다고 하는 이유는 이렇다. 비록 소속당인 민주당의 일부 구세력의 불협화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열화 같은 국민들의 개혁요구에 힘을 얻어 정권을 차지했다. 이제 대선에서부터 발목을 잡은 구세력은 잡초격이니 솎아내고 유효하고 유익한 자산만 가지고 개혁을 이끌 새 집을 짓자는 것이다. 그 형식은 가능한 반개혁적인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구주류가 스스로 나가든지, 아니면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신진 개혁세력만이라도 모여서 8월말 전에는 결론을 내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 간단치는 않은 것 같다. 불협소리가 터져 나오고 여차하면 민주당이 쪼개질 기세이다. 거기에 개혁당까지 코드를 맞추어야하나 여간 복잡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건 새 집을 짓는 근본이유는 개혁을 이끌어 갈 다수 세력의 확보에 있고, 그 방책은 호남에서 압승, 수도권 우세, 영남 일부 승리라는 것이다. 이른바 지역주의를 극복한 전국 정당이 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겉은 이래도 결국은 한나라당 세력을 약화시켜 소수로 만든다는 것인데 이것은 과거의 동진(東進)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싶다. ‘만들어만 놓고 당원들의 선택에 따라 총재도 하고 총무도, 사무총장도 뽑을 것이니 백의종군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만든 데 공들인 사람이 과실 따기 마련인데 백의종군은 아니라 할 것이다.

 지역주의는 지리적, 행정구역상의 문제가 아니라 연고에 따르는 의식의 문제임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얼마전, 한 시민이 지역주의 극복을 신당창당의 명분으로 주장하는 호남연고 의원에게 영남에서 출마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신당 관련 의원들은 그 대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새 집은 국민이 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옛날처럼 헌 집 주는데도 그냥 새 집을 내 줄 어리석은 두꺼비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웬만하면 정치분석사 자격증 하나는 가지고 있다는 농담을 허투로 듣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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