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대 생활과학부 교수·공학박사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엔트로피(entropy)와 포텐셜(potential)에너지라는 용어가 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다. 흔히들 ‘세상이 점점 무질서하게 변한다’고 해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세상이란다. 포텐셜에너지는 잠재에너지인데 당장 이용할 수 없지만 조금의 도움을 받는다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저장에너지인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인위적으로 질서를 도모하여 엔트로피를 낮추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 큰 힘을 얻는 지혜를 배운다.

지난 1월8일 건설공사장에서 인부 10명 가운데 1명이 사망했다. 나머지 9명도 통증을 호소,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며칠 뒤 퇴원했다. 경찰은 사건 전날 현장의 드럼통 물이 얼지 않도록 부동액인 에틸렌글리콜을 첨가하였는데 이 물로 컵라면을 끓여 먹은 것이 화근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50℃에도 얼지않는 부동액은 겨울철 자동차의 냉각수로 사용되는 점성 액체로 단맛이 있는 독성 당알코올 일종이다. 당알코올은 쓰임새가 많지 않고 사용하기도 불편한 탄수화물 종류를 화학적으로 약간 변형시켜 알코올 구조로 만든 것으로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

에틸렌글리콜은 감귤류, 토마토, 감 등 과일의 성숙을 촉진하기 위해 불법으로 사용하는 식물호르몬과 같은 에틸렌과 피부 박피시술과 피부연고 원료로 사용하는 글리콜산이 합쳐져 독성 부동액으로 변한 것이다. 이것은 물엿과 같아서 간혹 식품첨가물로 오용(誤用)되기도 하는데 과용(過用)하면 치명적인 살인무기로 돌변한다. 초기의 증상은 흡사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다가 심하면 메스꺼움, 구토, 복부 통증 등을 동반하다가 신장과 간 손상으로 결국 사망으로까지 이어진다.

인부들의 사건은 컵라면이 문제가 아니라 에틸렌글리콜이 들어가 있는 물을 많이 사용한 게 문제였다. 아마도 라면은 달콤했을 것이다. 소량이라도 문제가 될 것을, 그 물로 라면을 끓였으니 그만하기 다행이라 하겠다. 이들이야 실수에 과용이 겹친 경우이지만 세상사에서도 지나쳐서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자신의 지나침을 모르며 우기고 버티는 억지의 존재가 사람이 아니던가. 철새는 스스로 돌아갈 계절을 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꼼수 부리지 않는 철새도 중용이라는 걸 안다. 질서는 지나치지 않을 때 이루어진다는 엔트로피 이론이나 작은 보탬이 큰 힘을 내기에 충분하다는 포텐셜에너지의 잠재력 이론이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울산대 생활과학부 교수·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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