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대교수·역사학
생명의 탄생과 소멸은 믿음의 영역에 들어있기에 시비와 가부를 논하면 괜한 갈등만 불거진다. 다만, 그러한 믿음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설명할 수 있다. 조선후기의 지식인들은 ‘기(氣)’를 가지고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설명했다. 기가 뭉쳐서 생명이 되고, 풀어지면 죽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사회 전반에 퍼지기 전에는 전혀 다른 틀의 사생관이 퍼져 있었다. 그것은 불교에 근거한 것으로 윤회나 이승(이생), 전생 등의 표현이 동원된다.

알다시피 불교에서는 윤회를 인정한다. 속 깊은 이론이야 필자가 감히 접근하지 못하지만 불교에서는 독자적인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전기까지도 사람이 죽으면 으레 불교식 의례를 치렀다. 이것을 ‘재(齋)’라고 한다.

부모은중경과 우란분경, 그리고 시왕경이라는 경전이 있다. 이들 경전은 한 시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부모은중경은 부모님의 10가지 은혜를 제시한 것이다. 우란분경은 지옥에 떨어진 부모님을 구할 수 있는 의식을 설명한 것이다. 7월15일에 덕이 높은 스님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라고 하였다. 시왕경은 사후에 재판을 담당하는 10명의 왕에 대한 것이다. 7일마다 한 번씩 재판을 하는데 모두 7번을 거친다. 여기서 판결이 나지 못하면 100일, 1년, 3년 째 되는 날에도 재판이 열린다고 한다. 부처는 멀리 있고 시왕(十王)은 가까이 있다. 오죽하면 ‘염라대왕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생겼겠는가?

부모님은 은혜가 지극한 분이다. 당연히 극락왕생하거나 좋은 인연을 받아 환생하기를 빈다. 혹여 생전에 선업을 짓지 못했다면 시왕의 노여움을 사 축생이 되거나 지옥에 갈 수도 있다. 그러니 살아 있는 자식이 부처님을 즐겁게 하는 일을 대신해서 부모님의 구원을 빌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다음 생의 인연이 결정되는 49일째 되는 날은 더 없이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으로 고려와 조선전기의 사람들은 ‘사십구재’를 지냈다.

그러나 조선전기의 일부 선각자들, 그리고 조선후기의 지성인들은 이러한 생각을 부정했다. 사람은 죽어서 혼백으로 흩어지는데 어디 빌 데가 있는가? 게다가 부모를 죄인이라 하는 자식이 제대로 된 자식인가? 재는 백성을 속여 재물을 취하는 못된 속임수일 뿐이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조선의 가족이 고려와 크게 달라지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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