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불교에서는 윤회를 인정한다. 속 깊은 이론이야 필자가 감히 접근하지 못하지만 불교에서는 독자적인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전기까지도 사람이 죽으면 으레 불교식 의례를 치렀다. 이것을 ‘재(齋)’라고 한다.
부모은중경과 우란분경, 그리고 시왕경이라는 경전이 있다. 이들 경전은 한 시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부모은중경은 부모님의 10가지 은혜를 제시한 것이다. 우란분경은 지옥에 떨어진 부모님을 구할 수 있는 의식을 설명한 것이다. 7월15일에 덕이 높은 스님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라고 하였다. 시왕경은 사후에 재판을 담당하는 10명의 왕에 대한 것이다. 7일마다 한 번씩 재판을 하는데 모두 7번을 거친다. 여기서 판결이 나지 못하면 100일, 1년, 3년 째 되는 날에도 재판이 열린다고 한다. 부처는 멀리 있고 시왕(十王)은 가까이 있다. 오죽하면 ‘염라대왕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생겼겠는가?
부모님은 은혜가 지극한 분이다. 당연히 극락왕생하거나 좋은 인연을 받아 환생하기를 빈다. 혹여 생전에 선업을 짓지 못했다면 시왕의 노여움을 사 축생이 되거나 지옥에 갈 수도 있다. 그러니 살아 있는 자식이 부처님을 즐겁게 하는 일을 대신해서 부모님의 구원을 빌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다음 생의 인연이 결정되는 49일째 되는 날은 더 없이 중요하다. 이러한 생각으로 고려와 조선전기의 사람들은 ‘사십구재’를 지냈다.
그러나 조선전기의 일부 선각자들, 그리고 조선후기의 지성인들은 이러한 생각을 부정했다. 사람은 죽어서 혼백으로 흩어지는데 어디 빌 데가 있는가? 게다가 부모를 죄인이라 하는 자식이 제대로 된 자식인가? 재는 백성을 속여 재물을 취하는 못된 속임수일 뿐이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조선의 가족이 고려와 크게 달라지는 요인이 되었다.
울산대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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