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세화 시인
지난주에는 설날을 보냈습니다. 설날은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진작부터 새해가 시작됐지만 구태여 또다시 첫날로 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력설을 쇠고 나야 나이 한 살 더 먹는 걸로 알았습니다. 한때는 음력설을 홀대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민속의 날’이라고 이름도 바꾸어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구정’이라고 하던 것을 ‘설날’로 정하고 제대로 명절처럼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섣달 그믐날은 잠을 자면 안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억지로 참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영악해서 그런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는 어른들도 없겠지만 예전에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잠들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설날에는 설빔을 차려 입고 차례를 지내고 윗사람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덕담으로 인사를 나누고 문안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연날리기 널뛰기 윷놀이 제기차기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시절에는 겨울철이 되면 논바닥에 꽁꽁 얼어있는 얼음판에서 썰매 타고 연 날리고 노는 일이 일과였습니다. 그때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벼논마다 물을 가두어 두었습니다. 지금처럼 제대로 된 놀이터도 없고 논바닥 빙판은 좋은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이었습니다. 힘들게 연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옆 동네까지 가서 시누대(조릿대)를 구해다가 손가락이 아프게 다듬었습니다. 연 만드는 데는 시누대가 있어야 합니다. 굵은 대나무는 마디가 불거져서 연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서툰 솜씨로 연을 만들어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설날아침 동구 밖에는 연을 든 아이들이 몰려나왔습니다. 나도 내가 만든 연을 들고 나갔습니다. 보란 듯이 연을 날렸습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을 보면서 흐뭇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잠시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연줄이 끊어져 날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애써 만든 연을 날려버리고 풀이 죽어 들어오는 손자가 안쓰러워 할머니는 위로의 말을 해 주셨습니다. “너무 아까워 하지마라. 말도 못하게 섭섭하겠지만 액땜 했다고 치거라” 그때는 그 말뜻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강세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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