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주용 어린이재단 울산지역본부장
최근 오랜 시간 학교폭력을 당하면서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학생과 학급 내 따돌림 문제를 제보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청소년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인성을 키우는 대표적 공간인 학교에서 폭력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충격적이다.

지난 연말 어린이재단에서는 초등학교 4~6학년 1377명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폭력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 간 학교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많은 학생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한 학생 중 25%가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학교폭력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가끔(42%), 자주(18%), 항상(6%)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66%에 달했고, 전혀 없다(10%)거나 거의 없다(24%)고 대답한 학생은 34%에 불과했다.

반면 폭력을 당한 후 도움을 요청한 학생이 53%, 요청하지 않은 학생은 47%로 절반에 가까운 학생이 폭력을 당하고도 침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일이 커질 것 같아서’(28%), ‘이야기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19%),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16%), ‘보복당할 것 같아서’(11%) 순으로 조사되었다. 도움을 요청한 학생의 경우 ‘부모에게’ 45%, ‘학교선생님’ 28%, ‘친구’ 21% 순으로 응답하였으나,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에 신고하여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응답자 240명 중 단 1명에 불과하였고, 학교폭력전문기관이나 청소년 상담실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전무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은 당사자끼리 해결을 유도하는 다소 방임적이며 사후 대응적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미국·영국은 물론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필리핀의 경우도 학교폭력, 괴롭힘, 인격비하 발언 등에 대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사전 예방교육은 필수이고,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일단 학생들끼리 다툼이 발생하면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선별하며, 가해자는 즉시 일정기간 등교금지가 이루어진다. 학교는 가해학생 학부모와 면담을 실시하고,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가해학생은 물론 학부모에 대한 교육을 강화한다. 그 이후 재발할 경우에는 전학을 명령하고 사건의 경중에 따라 동일학군에서 추방된다. 피해학생의 경우 전문가의 심리 상담을 통해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처럼 선진국 대부분이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교육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유아시기부터 학령기 전반에 걸쳐 폭력이나 괴롭힘 등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교육을 철저하게 실시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학교폭력 근절대책으로 ‘경찰의 학교순찰 강화’와 ‘경찰서 내 학교폭력전담반 설치’라는 감시와 처벌 위주의 조치를 발표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고 생각된다. 학교폭력은 절대로 학생들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학생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와 가정은 물론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사회 내 학교폭력예방 전문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은 물론이고, 정부차원에서도 예방에 초점을 맞춘 교육프로그램을 전격 도입해 선진화된 예방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오늘날 전자문명의 발달은 언제 어디서나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첨단의 물리적 환경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으로 인한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는 청소년들이 발생한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소통의 벽이 높아졌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감출 수밖에 없는 학교폭력의 실상’은 청소년들을 끊임없는 경쟁과 긴장의 끝으로 내몬 우리 어른들의 잘못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안주용 어린이재단 울산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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