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운호 울산대 교수·디자인
디자인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사물이 완벽한 구조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실용적인 기능과 조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종합적이고도 문화적인 창작활동이다.

커피잔을 디자인할 때 기능상 다음의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커피의 종류에 따라 80~350mm전후의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용량 계산, 뜨거운 잔을 잡을 때 사용하는 손잡이의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와의 관계를 잘 파악해야 한다. 입술이 닿는 부분은 마실 때 입가로 흘리지 않도록 적당한 크기의 원형을 이루고 매끈하여 감촉이 좋아야 하며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아랫입술로 훔쳐 커피가 커피잔 외부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 또한 바닥에 놓을 때와 세척할 때 쉽게 깨지지 않을 정도의 재료와 강도를 지녀야 하며 바닥에 접촉하는 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바닥면에 일정 높이의 테두리를 두어야 한다. 잔 받침을 제외한 단순한 커피잔 디자인에 물리학, 재료학, 인간공학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면 공학적 데이터와 통계에 의해 최적의 조건이 충족되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커피잔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다. 기능적으로는 만족할 수 있겠지만 사실 커피잔으로서 상품적 가치를 크게 좌우하는 것은 조형적인 미(美)이다. 동일한 커피를 일회용 종이컵에 마시는 것과 소중하게 아끼는 예쁜 커피잔에 마시는 것은 서로 다르게 느껴진다. 바로 감성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기능적인 요인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대중과 공감하는 미를 찾아내는 동시에 차별화할 수 있는 창의적인 조형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커피잔으로서의 상품적 가치가 생긴다.

또한 잘 팔리는 좋은 커피잔이 굿 디자인이기에 비즈니스가 개입되어 심리학, 경제학이 적용된다. 과거 물자가 풍족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기능적인 면이 강조되고 보다 저렴한 물건을 위해 대량생산을 근간으로 디자인하였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물자가 풍족해지고 인간생활이 윤택해짐에 따라 소비자의 구매심리는 한층 변덕스러워졌다.

정보사회가 열리면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상품과 서비스 위주의 문화 사업이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다. 이에 커피잔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커피를 향유하는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문화를 디자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 사회학 등도 적용해야 한다.

이래저래 앞으로 디자인하려면 고려해야할 것도, 알아야할 것도 많아지고 점점 힘들어진다.

백운호 울산대 교수·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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